▲길도훈 교무 /
성주 삼동연수원

다면 평가, 일반 기업에서는 바람직합니다. 이익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원불교에서의 다면 평가도 공정한 인사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론부터 생각을 해봅시다.

첫째. 다면 평가를 해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학생들 가운데 전국 3% 안에 들어야 공부를 잘 한다 하고,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은 중간 또는 못하는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아마도 원불교에서 그런 현상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대다수의 사기를 꺾는 평가가 될 것 같아서 우려가 됩니다.

우리가 돌담을 쌓게 되면 큰 돌, 작은 돌, 납짝한 돌, 둥근 돌, 길쭉한 돌, 모난 돌 등, 나름 모두 아름답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크고 넓은 돌이라야 돈을 벌 수 있다면 이익 집단은 그 돌 외에는 다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다면 평가로 크고 넓은 돌만을 원한다면 나머지 돌은 버려야 합니다. 원불교는 공부, 교화, 교육, 자선, 사업 등의 종합적인 수행집단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단에는 여러 특성을 지닌 도반들이 모였습니다. 모두가 교단을 위해 헌신하고자(돌담이 되고자) 한다면 적재적소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 획일적인 평가로 순위를 만드는 듯한 평가라면 우리 교단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둘째, 영적 지도자를 일반 사람이 평가할 수 있을까요. 여래는 항마도 알기 어려운데, 일반적인 잣대(다면 평가의 한계)로 인재를 키우려고만 한다면 여래 근기의 싹은 초기에 잘라버리고 고만고만한 사람만 남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이상이라야 진면목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또 소수의 사람이 평가하는 곳에서의 평가는 대의(大義)보다는 인정에 호소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자기에게 금전적, 시간적, 인정으로 꼴을 잘 보거나 후한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영성과 대의가 아닌 인정 위주의 불공이 우선하는 집단으로 전락될까 우려 됩니다.

셋째. 다면 평가에 의한 점수로 인사를 한다고 못을 박으면, 인격적으로 원숙한 사람, 또는 전략적으로 변두리의 한적한 곳에 가고 싶어도 마다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될 것입니다. 남들로 하여금 실력이 없거나, 성격 즉 인격에 뭔가 하자가 있어서, 시골이나 문제가 있는 곳에 왔다고 생각하게 하는 분위기가 되겠지요.

설사, 용기를 갖고 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도 벅차고 교화도 벅차집니다. 이런 주위 분위기와 눈초리가 싫고, 그에 대한 변명도 구차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가고 싶어도 마다하겠지요. 또 주위의 인연들 즉, 가족이나 인척들이 체면을 운운하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말릴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쇠락한 교화지를 살려야 한다"며 총부에서 가라고 하면 가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설사, 능력이 좀 모자라도 '인정에 의해서 내가 어려운 교화지에 갔다'고 스스로 위안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총무부나 인사위원회에서 인격과 능력을 고루 평가하려는 마음과 그에 따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교화위주의 책임인사가 될 수만 있었어도 30년 가까운 교화 정체는 없었을 것입니다.
총부에서 책임인사에 따른 과단성있는 인사 조치를 기대해 봅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