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카라 선교소 국제 선 센터.


나는 나의 여생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지난 8월 2주간에 걸쳐 어려운 여건에서도 특별한 서원과 신념으로 개척교화를 하고 있는 카트만두와 포카라 교화현장을 방문하였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공항에서 이하정·모시은 교무,봉사 중인 노귀남 교수의 환영을 받고 기사 알레의 차를 타니 온갖 피로가 일시에 가셨다.

일을 보러 곳곳을 다니는데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색이 창연한 이 낡은 도시 해발1300m의 이 분지에 인구 400만이 살고 있다는 것과 인구보다 많은 힌두의 신과 숙명적 카스트 제도가 지금도 상존하고 불교는 티벳불교가 대표격이 되어 세계적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낡은 포장도로를 중고차와 오토바이들이 경적소리 검은 연기를 뿜으며 먼지 자욱한 속에 물결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다양한 민족과 모습의 시민들이 민주혁명을 이룬 자부심과 아직 아시아의 빈국에 속하나 새롭고 보다 나은 사회에 희망을 갖고 깨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우리의 과거와 현실이 회상되고 한국에 태어나 정법을 만난 기쁨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셨던 스승님들의 법문이 새롭게 감명으로 다가왔다.

교외 달마사리에 위치한 우리 어린이집과 새삶 직업교육장을 찾아드니 해발 2700m가 넘는 시바산이 뒤로 병풍같이 둘러있고 오른쪽은 나가주나 (용수보살) 토굴과 석존의 행적이 있는 나가주나 산이 시내를 향해 힘차게 내려가고 좌우로 뻗은 산맥은 광활한 분지를 이루어 범안으로도 승지가 분명하다. 1320㎡의 부지에 41485㎡의 호탤과 같은 4층 건물이 들 한복판에 우뚝 서서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 자랑스러웠다.

원불교 선교소와 국제 선 센터가 자리한 포카라 시는 서쪽으로 240km 떨어진 인구 70만의 농촌 휴양관광도시로 히말라야 8000m이상의 설봉 5, 6개를 선방에서 볼 수 있는 명소이다. 이곳에 먼저 자리하게 된 것은 한국 네팔 의료봉사단 대표 이근후 박사의 지면과 협조의 덕이라 한다. 여기에 명상센터를 구상한 분이 한국의료봉사단의 거처마련을 허용하여 단층건물을 지어 매년 사용해온 것을 이제 우리가 인수하여 부지2640㎡에 본건물 3층 495㎡ 부속건물 2동을 갖추어 소규모 국제선원으로는 손색이 없게 되었다.
네팔정부는 아직 종교 법인을 허용치 않아 이곳은 사업 법인으로 교무가 대표가 되어 있다.

왼쪽부터 이하정 교무, 필자, 라디샴까마로 전장관, 불교학자 삿띠안 모한조쉬.

카투만두에 어린이집을 시작하게 된 것은 불교 경실련 대표로 한국 NGO에 참가 카트만두에서 일하던 김돈각 님의 법연과 공덕이 크다 한다.

수도 카투만두에 어떻게든 자리 잡아야함을 고심하고 있을 때 김돈각 님을 만나 NGO 법인으로 어린이집을 시작하게 되었고 한국 KOTRA의 대외협력가금을 후원 받아 증축, 새 삶 복지센터를 계획하고 현재 여성 직업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김돈각 님은 교도가 되어 이번 천안 국립청소년 수련원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더욱 감사했다.

나는 네팔에서 이러한 여러가지 사업이 인력과 재정적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오직 현지 교무들의 희생적 봉사의 법인정신 구현에 법계위력의 감응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 불사에 현지인으로 지난 왕정때 최연소 법무장관을 지낸 라디샴 까마로 씨가 적극 돕고 교도가 되어 현재 정산종사법어를 번역하면서 신심이 더욱 확고해 지고 있다 한다.

우리는 까마로 씨의 안내로 8일 밤에 국립극장에서 불교예술로는 네팔에서 처음으로 공연되는 '가비라성의 신들' 이란 뮤지컬을 관람하고 축하와 격려를 하였다. 다음날은 이곳의 유명한 학자 삿디안 모한 조쉬 씨가 최근에 개발한 '천불송' 시연회를 우리를 위하여 베풀어 주어 공양을 받아가며 뜻 깊은 의식을 관람하였다. 조쉬씨는 용수의 중론, 공 사상의 대가로 일원상을 보자 바로 점두 공감한 분이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숙겁의 서원과 인연이 없이 어찌 이루어지겠는가? 부처님의 위력이요, 삼세인연의 공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어 감개가 무량하였다.

나는 이하정 교무와 대화 하면서 교법에 대한 대의와 확신을 가지고 스승님들의 경륜과 유촉을 제대로 받들어 드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그의 깨어있고 열린 마음, 폭 넓은 식견, 장한 마음에 든든하였다.

네팔에는 70년대 한국과 같은 새마을운동이 절실함과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은 대산 종사께서 생전에 염원하셨던 김준 원장님을 모시고 새 삶 운동을 전개토록 하신 경륜이 실현 되었어야 함을 다시 공감하면서 나는 이 일에 무한한 죄책감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남은 여생 유촉을 받드는 참된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선방에 모셔진 세분 스승님의 소박한 진영을 관하며 국제적 이 불사의 성공과 행운을 기원하였다.

그때 유독 소태산 큰 스승님이 나를 자애롭게 굽어보시며 윙크를 하셨다.

"진리는 단순명료한 것이다 순수한 자연 꾸밈이 없는 본연으로 살라. 본연을 등지고 색칠하고 덧칠할수록 법계와 불성에서 멀어지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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