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가을이다. 세월로 말하면 가을은 만물숙성의 철이니 결실의 계절이요 내실을 기하여 속을 단단히 옹골차게 속살을 찌우는 철이다.

인간으로 치면 중년을 넘어 노년기 초임에 접어드는 시기일성 싶다. 그간 갖은 고생을 하면서 어느 정도 집안이나 직장에서 체제를 구축하였고 이젠 다소 안정된 가운데 긴 세월의 뒷모습을 회상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장래에 대한 확실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서도 어떻게 노년기의 마지막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할 것인가에 고민을 더욱 많이 할 시기라 생각한다.

40대 아주 잘 나가는 사장이 갑자기 죽음에 이르러 염라대왕을 보자마자 악을 쓰며 대들었다.

"여보시오 염라대왕! 세상에 어디 이런 법이 있소. 내 나이가 몇 살 인데 나를 잡아온단 말이요. 데려오려면 귀뜸이라도 해 줘야지, 준비할 시간을 줘야하지 않겠소. 나를 어쩔 것이요. 어린 자식들은 어찌 살 것이며, 마누라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그 많은 회사들은 어찌 되겠소.."

중년 사장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난 염라대왕은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말하였다. "여보 사장 어른! 당신은 갑자기 데려왔다고 탓하나 나는 수도 없이 당신에게 소식을 전해주었소. 그것을 받았으면서도 무시하고 만 것은 바로 당신이요. 들어보시구려. 처음에 눈으로 보내지 않았소. 차츰 눈이 나빠지기 시작하면 알아채야지. 두 번째 흰머리로 알리지 않았소. 어디 그뿐이요. 당신 주위에 이런 저런 이유로 세상을 떠나는 이가 있을 때 나도 멀지 않았구나 하고 알아채서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 아니요. 세상을 보고 공부한 사람은 소식을 금방 알아채지만 당신같이 공부 안한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이렇게 된 것 아니요" 하며 오히려 나무라더란다. 내세를 준비하는 종교인들이 공부와 사업에는 시기가 없이 서둘러야 한다는 말씀을 회자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사람이 중년을 넘어 노년기에 접어들면 모든게 가난병에 걸리게 된다. 눈도 가난해져 제대로의 시력이 떨어지게 된다. 귀도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기억력이 떨어지니 매사에 땀만 나고 능률이 오르질 않는다.

허나 가난한 육체를 탓만 하면서 언제까지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먼저 마음을 바꿔야 한다. 비록 몸은 가난이 들었지만 마음을 풍성하게 하면 마음 부자가 되는 것이다. 마음부자란 다른 게 아니라 마음을 넉넉하게 쓰는 일이다. 아직 입은 성성하니까 덕 있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 된다. 가장 좋은 덕을 쌓는 말은 틈만 나면 칭찬하는 말이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칭찬하는 말을 골라서 쓰면 인기 있는 노년을 맞이할 것이다. 또 마음을 여유롭게 넉넉히 유지하면 된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아침에 세운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실행하는 일이다. 저녁에 실행된 결과를 점검하면서 미진한 일을 내일 다시 고쳐 실행하면서 여유롭게 생활하면 될 것이다.

우리는 부자를 부러워하거나 부자 되지 못한 걸 한탄할 일이 아니라 마음의 부자가 됨으로써 더욱 풍성한 인생을 살아갈 요건을 갖춰야 한다. 풍요로운 이 가을은 오곡의 풍요로움만 안겨주는게 아니라 마음의 풍요를 배워 마음이 넉넉한 사람, 여유롭고 한가로운 사람 그리고 자기 부족을 스스로 채워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간절한 계절이다.

/문화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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