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교 교도

37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육십 성상의 나이가 되고보니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싶다.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니 보람보다는'어리석은 삶을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라도 '여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일까' 생각해오다가 영산 성지는 대종사님이 탄생, 구도, 대각을 이루신 근원성지에 가서 도량 청소도 하고 풀 한 포기라도 정성껏 뽑으면서 사는 것이 보은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10월 중순부터 영산성지에 오자 정관평의 추수가 시작 되었다. 몸에 배이지 않은 서투른 일솜씨로 따라 하다 보니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때도 많았다. 그럴때면 '9인 선진님들은 바다도 막아 정관평을 만들었다는데 이 정도 일을 힘들다고 하면 나는 영산성지에서 살 자격 없어'하고 스스로를 채찍질을 했다.

숙소가 대각전 옆에 있는 방이다 보니 처음에는 법당에서 목탁 소리가 나서 어쩔 수 없이 좌선에 나갔다. 하루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아무리 힘들어도 새벽 4시 30분에는 어김없이 일어나 좌선에 빠지지 않고 나갔다.

좌선이 끝나고 곧장 노루목 대각터에 가서 마음에 다짐 심고도 올리고 탄생가, 구간도실을 거쳐 옥녀봉을 올라갔다 오거나 아니면 정관평을 한 바퀴 산책하고 나면 마음은 그렇게 풍요롭고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건강도 집에서 생활 할 때보다 더 좋아졌다.

법회는 한 달에 3회 보는 영산교당 법회와 영산선학대학 일요법회에도 나가 열심히 마음공부도 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 일원상 서원문 10독. 영주. 청정주 각각 108독을 유무념 대조공부로 정해서 실천하고 있다.

영산성지 생활을 하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교무님이나 신심 공심 있는 교도님들이 근원성지를 찾아 삼밭재 기도실에 올라가 기도를 올리고 또 일반 순례객들이 성지를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성지관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5만여평의 논에 친환경 무농약 및 저농약 농사를 직접 지어서 추수한 벼를 교무님들이 직접 들어서 건조장에 넣어 건조시키면 다시 저온 창고로 옮겨 보관한다.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마다 방아를 찧어 포장해서 보내는 작업까지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바가 컸다.

교무님들은 교화나 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맡은 바 주어진 일터에서 상일꾼처럼 이소성대와 무아봉공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시는 교무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우리 원불교가 100년의 역사도 못되었는데 이 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교무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났다.

이제 원불교 100년를 앞두고 더 많은 순례객들이 근원성지인 영산 성지를 찾아올텐데 적은 인원으로 성지를 관리하다 보니 할 일이 너무 많다.

교무님들이 할 일이다 생각하기 이전에 이제는 우리 재가교도들이 자원봉사자로 앞장서 틈나는 대로 성지를 찾아 깨끗하고 성스러운 도량으로 가꾸어 후진들에게 부끄럼 없는 100주년을 향한 준비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마음의 고향 영산성지를 힘 미치는 대로 열심히 가꾸며 내생에도 다시 영산성지에서 태어나 교역자로서의 바른 길을 걸으며 살겠노라고 마음에 다짐을 해 본다.

/우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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