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교무·영산선학대(논설위원)
내 어릴적 기억을 상기해보면 사방공사와 밀가루 배급의 함수 관계가 생각난다. 그리고 해마다 잔디 씨를 비롯해 여러 가지 풀씨를 채취해 학교에 제출했던 기억도 난다. 벌거숭이산을 푸르게 하기 위한 숙제였던 것이다. 박정희 군사독재에 가혹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이 부분 만큼은 수종(樹種)선택을 제외하곤 비판의 칼날을 거둬들이는 대목이다.

어떻든 우여곡절 끝에 이 땅은 무궁화 삼천리 화려한 강산이라는 본래면목을 상당부분 되찾게 된다. 그러나 경제개발 몇 개년 계획, 수출 몇 천억불 달성이라는 바람몰이에 눈멀고 귀먹어 환경오염이라는 자산도 함께 안겨주었다.

왜 그랬을까? 한 가지 목적 달성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문제를 간과한 것이다. 개발이라는 경제적 가치에 매료되어 보존이 주는 더 큰 가치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계 일각에선 아직도 이러한 사안에 대해 충분히 눈을 뜨지 못한 것 같다. ‘대운하' 건설이 그것이다. 이는 상황은 다르지만 과거의 역사를 답습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천행다행인 것은 이런 상황을 좀더 깊게 성찰하고자 4대종단의 성직자들이 중심이 되어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를 하고 있음이다.

천성산의 도롱뇽을 위한 비구니의 단식기도, 새만금 개발이 가져올 재앙에 대한 삼보일배의 대참회 정진, 방폐장 문제해결을 위한 교무들의 100일 단식기도… 이제 대한민국의 성직자들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시대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간 울을 넘어 온 국민, 아니 온 인류가 하나의 생명공동체로 살아갈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누구 또는 어느 단체를 미워하거나 시기하려함이 아닌 전체를 위한 참회기도인 것이다.

이번 도보순례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운하건설을 반대하기 위함이 아닌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생명파괴도 불사하는 물질중심의 삶을 경계하는 경종(警鍾)소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종교인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 내지는 ‘운하를 모르는 비전문가들의 행위'로 폄훼한다.

다시 말하지만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는 ‘금수초목까지도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적(恩的) 관계'임을 알리고. ‘삼라만상이 연기되었음'을 깨우쳐서 ‘창조의 질서를 따르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행진이요, 대기도이며, 대참회 정진 수행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성현들의 가르침을 전하려는 저들의 몸부림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한다. 왜냐하면 인간본위의 행복추구는 결국 인간의 행복과 생명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옴을 역사 속에서 익히 학습하여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운하! 너는 정략에 이용당하지도 말고 이 땅을 훼손하는 경기부양책의 제물이 되지도 않길 희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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