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면 쉽게, '교도들이 부교무님을 스승으로 잘 받들어 모셔야 된다'는 얘기를 하려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오늘은 교무가 부교무님을 잘 받들어 모시는 것에 관하여 얘기하려 한다.

많은 교당에서 교무와 부교무가 같이 어우러져 생활하고 있는 것이 사실 일진대 이 문제는 그리 만만히 볼 것 만은 아니다. 또 교무가 여러 이유로 부교무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새 부교무 받기를 원하거나 실제 교체되는 경우도 어렵잖게 보게도 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그런 사실을 지켜보는 교도들에게서 스승으로서의 자기 가치를 폄하 받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 교법의 대간이, 동포은이요 공도자 숭배요 사사 처처 불상인데도 사실상의 내치고 배타하는 행위인 부교무의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의 공부 정도를 내 보이는 행위이니 어찌 그것을 보는 교도들에게 선한 가르침이라는 평을 받을 수 있겠는가?

같은 공도의 길을 들어선 선진이요 후진이요 하면서는 더더욱 삼가야 할 일임은 너무나 확실하다. 교체를 청하는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이고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서로 생각 생각이 맞지 않고, 행위가 맘에 안들고, 무얼 잘하지 못하고, 목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윗사람인 교무가 눌리고 기타 여러가지의 일시적 부조화는 원래 없는 것이다. 거기에 걸려있는 교무가 스스로 챙겨서 없이 해야 할 경계일 뿐이라는 걸 놓친 부끄러운 일이다.

부교무는 교무에게 있어서 동포요, 공도자요, 받들어 모셔야 될 부처이다. 잘못은 잘 가르처야 될 꺼리이고 각자가 서로 다를 뿐이지 내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이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려고 일원의 대도문 안에 들어온 두 교역자 사이에 이런 일, 즉! 부교무 교체를 요구하는 일은, 교역자로서의 바른 태도라 하기 어렵다.

이처럼 작은 경계 하나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 녹여 없애지 못하고, 화하지 못하고, 어찌 여러 교도의 스승이란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 스스로 평가해 봐야 한다.

그런대로 원만히 굴러 가던 교당이 위와 같은 일로 두 쪽 세 쪽이 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참으로 애석하고 난감한 일이지만 현실이다.

스승이라고 하니 스승이라 믿고 무조건 따르자는 부류와, 대종사님 말씀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류와, 부교무를 더 따르던 교도들 사이에는 교당 무용론을 주창하는 부류마저 생겨난다.

어느 부류가 옳다는 판단 이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교무의 교체는 원칙적으로 있어서는 안된다. 교무가 종법사의 명으로 부임 하였기에, 그 권위가 종법사에 버금 간다면 부교무 또한 그와 같다. 타인의 권위를 인정치 않으면서 교도들에게 자기의 권위만을 인정하라고 외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러나 정히 두 교역자가 한곳에 있기가 어렵다고 판단 되어지면 두사람을 동시에 인사 발령하는 것이 정도다. 지금도 어느 곳에는 이 문제로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는 교당이 확실히 있을 것이다.

/진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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