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곤 교도                              ▲ 최문순 교도
제18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나고 당락의 희비속에 민심의 향방이 새롭고 대중의 선택은 현 시류를 읽기에 충분하다. 구태의연한 정치에 매달렸던 과거가 실용과 실적, 참신함으로 변모하고 있으나 46%의 저조한 투표율은 누가 뭐라해도 우리 정치계의 현주소이다. 정치와 종교가 수레의 양바퀴로 굴러 가야할 길이 한쪽바퀴만으로 굴러온 길의 여정처럼 보이고 또 가야할 길의 만만치 않음에 가슴 한 켠이 답답함으로 밀려온다. 정치인들만 탓할 수도 없고 확 열리지 못한 시대인심을 탓할 수도 없다. 사생일신의 공업으로 함께 눈에 보이는 폐해의 궁극적 원인을 교법에서 찾고 살려나가야 한다. 그나마 변화의 추세가 내실과 공심을 갖춘 정치인을 요구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요즈음 교도님들과 모임공부에서 반야심경을 공부하고 있다. 교당운영을 하다보니 법회만으로는 심도있는 교리전달이 부족하여 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디. 그러한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보니 공부와 사업, 교도간 소통에도 도움이 되고 지난 일년을 그렇게 달려온 결과 내용적으로 미진하지만 월 3회의 강연법회를 시작하게 되어 교도님들이 뿜어내는 들꽃같은 법열을 누리고 있다. 또한 모임공부 마무리에는 몇 분의 소득감상을 듣곤 하는데 이번주에 색즉시공을 공부하다가 ‘겁(劫)’과 ‘일대겁만의 회상’에 대해 알게 되자 이내 신입교도 한분이 “겁에 대해 알고보니 원불교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고 더 파고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또 한분은 “지금까지 이 철원지역에서 튀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세계를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하신다.

예비교무시절 왜 ‘겁’이라는 법문을 하셨는지 ‘일대겁만의 회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쉽게 풀리지 않아 많은 시간을 의두로 연마했던 기억이 있으며 이 의문이 풀리자 비로소 주세불관이 정립되게 되었다.

겁이란 긴시간을 뜻한다 대산종사님의 법문에 의하면 1겁이란 인간수명 80세로부터 매 백년에 1세씩 더하여 8만 4천세까지, 다시 8만4천세에서 매 백년에 1세씩 감하여 인간수명 80세까지의 긴시간으로 20겁이 1소겁이 되며 40겁은 1중겁, 80겁은 1대겁이라 한다.

이 일대겁만에 원불교가 나왔다고 하여 계산기로 두드려보니 13억 4천4백만년이 된다. 이 일대겁에 천지의 성주괴공이 한번 바뀌기에 대종사께서 그 새로운 시작이 1924년 갑자년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히셨다. 또한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지향하는 교단이고 인도상요법을 강조하며 신기한 술수를 배격하는 교법이기에 이러한 겁의 법문은 우리에게 많은 ‘연구할사!’의 숙제를 준다.

이제 일년중 가장 거룩한 대각개교절을 맞이하여 주세불이신 대종사님을 조금이나마 체받고자 기도결제로 대종사십상과 성비명을 합독하고 있다. 성비명에도 광겁종성(曠劫種聖)이라는 표현이 있다. 일대겁만의 회상은 원불교의 시공관을 알수있는 또 하나의 길이고, 소태산대종사님을 주세불로 각인할 수있는 여래의 방광이요 최고의 성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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