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랑고 교사 / 연산교당
● 알아채는 공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다인이 엄마가 내가 사온 진통제에 젖먹이는 엄마는 먹지 말라고 되어 있다며 약을 다시 집어 넣는다.

괜찮겠냐고, 다시 가서 물어보고 다른 약 사올까 했더니 괜찮다고 몸살기가 좀 나아지는 것 같다며 그냥 참겠다고 한다.

둘이서 다인이를 보다 내가 학교를 가니 힘들어서 다시 몸살기가 찾아드는구나 싶다.

앉아서 놀아주지도 못하고, 피곤해서 누운 채로 다인이를 보는 집사람을 보니 걱정이 되고 안쓰럽고 해서 마음이 심란하다.

경계임을 알아채고 공부를 하였다. 걱정과 안쓰러움에 끌려 다니던 마음에서 떨어져 원래 자리에서 심란한 내 마음을 바라보니 우울해 지는 것이 가셔지고, 병이 오고 감이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진다.

● 경계는 원래 요란함이 없다

출근길, 학교 운동장에 씀바귀들이 환하게 피어 인사를 한다. 아침부터 꽃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 나도 저렇게 환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기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상쾌한 기분으로 교무실에 들어 왔지만, 처음 들리는 소식이 3학년들이 또 아침운동 빠졌다는 이야기다.

우리 반은 4명. 이번이 세 번째니 에휴, 교내봉사 일주일이다. 다음에 한 번 더 빠지면 교외 봉사를 1주일 가야한다. 밝고 상쾌했던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조회 들어가니 깨워주는 사람 없어 못 일어났다고,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알람 소리가 안 들린단다.

거기다 지훈이는 몸이 아프다며 기숙사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상엽이가 찾아와서 대신 조퇴 시켜달라고 한다. 학생부에선 몸이 아프다고 불러도 안나오니 병원 보내라고 하고. 결국 억지로 불려나온 지훈이, 잔뜩 찌푸린 얼굴이다.

감기 걸린 거냐고 물으니 머리 앞부분이 아프단다. 몸살이라도 걸렸으면 병원에 보낼 텐데 그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나 물으니 퉁명스럽게 “병원은 돈 아깝게 왜 가요”한다.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해야지 했는데, 1교시도 되지 않아 찡그린 얼굴까지 봐야 하다니. 경계다.

마음을 다독이고, 단순히 머리만 아픈 거라면 병원 안 가고 약 먹고 참아보겠다 하는 것처럼 조퇴하지 말고 학교 나와서 이겨 내야지 않겠냐고 하고 수업에 들어 가라고 돌려보냈다.

사감선생님께서 늦게까지 잠을 안자서 그렇다 하신다.

꽃보고 좋아하던 마음이 저 멀리 가버리는 게 보인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에 따라 있어지나니… 봄이 되어 환하게 꽃피어 기분 상쾌하게 해주는 것도 좋은 인연이고, 경계에 따라 찡그린 얼굴로 다가오는 아이들도 소중한 인연이겠지. 그걸 받아 들이는 내 마음의 자세에 달려있는 것.

경계에 휩쓸리지 않도록 차분하게 마음을 살피고, 일어난 일을 살피자.

쉼 없이 공부시켜 주는 고마운 인연들이라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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