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은교도 / 개봉교당 
원기 93년 1월 30일 4년 넘게 침상에서 고생하시던 어머님이 열반에 드셨다.

어머님과 같이한 수많은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머님은 3남 3녀를 두셨다. 그런데 항상 장남을 제외한 다른 자식을 편애하시고 좋아하셨다.

남편과 나는 부모를 봉양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맡아 하면서도 부모님한테는 언제나 꼴찌 아들 꼴찌 며느리였다. 그러다 보니 집안이 시비이해로 항상 시끄러웠고 나와 남편에게 터무니없는 제동을 걸며 괴롭히는 동생도 있었다. 각자 자기 주장대로 집안일을 이끌다보니 우리집은 사공이 너무 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갈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님의 처신에 불만을 토했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어머님을 대하였다. 그러니 내마음이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원불교가 떠올랐다. 지금 우리 단장인 문도선교도에게 물어보니 개봉교당이 근처에 있다고 한다.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나의 친정어머님이 어느날 원불교를 다니신다고 하신다. 원불교가 어떤 종교일까. 사이비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몇 번의 교리 설법과 분위기를 파악하고 안심하였다. 20대 초반 항상 행복하고 걸림이 없는 생활 탓 일까. 강력한 어머니의 권유에도 교당을 별로 찾지 않았다.

원기 91년 4월초 나는 원불교 개봉교당을 찾았다. 교무님의 여러 가지 설법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조금씩 원불교에 흡수되어 들어갔다.

어느 날 아침 좌선과 독경을 하고 침상에 계신 어머님을 대하니 중생으로써 피할 수 없는 병사에 걸려 고생을 하시는 어머님이 안쓰럽고 내가 진심으로 대하지 못한게 죄스러웠다.

때로는 어머님이 자애로운 부처님으로 보였다. 그런 후 나의 마음은 평상심을 되찾았고 꼴찌 아들과 꼴찌며느리가 어머님에게 최고 아들, 최고 며느리가 되었다.

어느 날 어머님께서 “에미야 내가 이렇게 오래 누워있어서 에미한테 미안하고 정말 고맙다 애비한테도 고맙다." 여러 번의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시고 3달 후 어머님은 열반에 드셨다.

그렇다. 대종사님의 대각의 의미와 교무님이 나에게 던져 주고자하는 것이 이것이구나. 나에게 일어났던 이 모든 것이 인과인 것을 알았고 원만 구족한 마음을 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 자신이 어려웠던 것임을 4월에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제 나는 불생불멸의 이치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확연히 믿고 한 발 한 발 진리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석양에 지는 노을이 아름답듯이 늙음을 서럽다 하지 않고 이 순간에은혜를 발견하고 감사생활을 하는 공부인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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