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진안교당 김순창 교도
"실지불공의 참 모습 보여주는 신앙인
교법으로 빛낸 행복한 수행생활
바르게 착하게 살아 준 자녀들 고마워"

 

"항상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궂은 일도 있고 그러죠. 그러나 오늘날 까지 별탈 없이 살아오게 된 것이 다 법신불사은님의 은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남편을 위해 40년 간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 온 전북교구 진안교당 김순창(호적명 순자·64) 교도. 그는 실지불공의 참 모습을 보여줘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처음엔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모르고 소개 받았죠. 그런데 그것도 다 인연인가 봅니다. 그렇게 만났어도 싫은 마음이 나지 않았으니까요." 26세 때 친한 친구의 소개로 남편(박춘식·66)을 만난 김 교도는 친정 부모님과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3년이라는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됐다.

박 씨는 1966년 군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양쪽 눈을 실명하게 돼 의병 제대했던 것. 이런 남편의 밝은 눈이 되는 불공의 삶을 시작한 김 교도는 매사에 감사한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김 교도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 바로 앞에 있는 수저도 찾지 못해 밥을 먹지 못할 뿐 아니라 대문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한 세월이었다.

이런 그에게도 봄날 같은 희망이 찾아 왔다. 어려서 어머니에게 배운 삯바느질로 어렵게 생활하던 그는 1974년 전주보훈지청의 도움으로 포목상을 하면서 그의 솜씨가 빛을 발하게 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느질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했고 2남1녀의 어린 자녀들 교육에도 정성을 쏟을 수 있었다.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국가유공자인 아버지의 명예에 누가 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무엇보다도 아무 탈 없이 바르고 착하게 살아준 자식들이 고마웠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장성해 결혼했을 때가 제일 기뻤습니다"

자녀들도 이런 어머니의 정성에 힘입어 원하는 직장을 찾아 사회의 일원으로서 착실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신앙적 갈등이 있었다. 진안교당 초창 당시부터 부모님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교당을 다니게 됐다는 그는 결혼 후 남편 뿐 아니라 가족들이 기독교 신앙을 하고 있어 마음 편히 다닐 수가 없었던 것.

1년 동안은 아무 말이 없던 남편이 일요일에 교회를 다니자고 해 그 이후부터는 서로 교회도 교당도 나가지 않았다.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가 자리 했기에 비록 교당은 나가지 못해도 그 신앙하는 마음은 놓지 않고 기다렸다.

결혼 후 교당을 찾지 못해 아쉬웠던 그는 4년 전부터 교당을 찾았다. "이젠 마음 편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남편도 일요일만 되면 늦지 않게 빨리 챙겨서 가라고 할 정도가 돼 기쁩니다."

김 교도는 지난해 운전면허증을 따내 남편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을 태워주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다. 또 각종 상이군경회 행사 때면 봉사활동에 몸을 아끼지 않는다. 김 교도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전북일보사가 주최하고 전주·익산보훈지청이 후원하는 제34회 전북보훈대상 '중상이자 배우자 부문' 포상도 받았다.

집안에서도 착한 며느리로 인정받고 있다. 부평에 사는 시누이가 "자네가 교당에 다녀서 내가 부평교당에 다니게 돼 법명도 받았네!" 라고 하셔서 "내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는 김 교도. 그는 교법으로 빛낸 불공인이요, 참 신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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