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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진 원로교무의 재미있는 성리여행 9. 번뇌가 구름 벗겨지듯 사라지니
이종진 원로교무의 재미있는 성리여행 9. 번뇌가 구름 벗겨지듯 사라지니
  • 이종진 원로교무
  • 승인 2008.12.19
  • 호수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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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淸風月上時 萬像自然明)'이라 '맑은 바람 달 떠오르니 만상이 자연히 밝았도다.' 이 시는 대종사님께서 일원의 진리를 깨달으시고 그 심경을 시로서 표현하신 것이다

원광선원 성리훈련 때 이 시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말해보라고 하였더니 "달이 구름속에 갇혀 있을 땐 깜깜해서 사람인지, 짐승인지, 돌인지 구분이 안되는 것은 진리의 체 자리를 밝힌 것이고, 밝은 달이 중천에 뜨니 사방이 밝아져 사람, 소나무, 돌 등 만상이 여실하게 나타난 것은 진리의 용 자리를 밝힌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하는데 그럴싸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건 진리를 사량으로 헤아려 보는 것이지 깨달은 심경을 나툰 것은 아니다. 대각을 이루신 심경이라 하면 깨달은 당시 마음의 상태, 기분, 느낌을 말 할진데 다른 차원에서 풀이해야 한다.

명월은 밤 하늘에 떠있는 달이 아니고, 청풍도 대지위에 부는 바람이 아니다. 맑은 바람을 순간만이라도 맛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무슨 바람인가를. 중생을 괴롭히고 미혹되게 하는 것을 번뇌라고 한다. 중생이 중생된 것은 부처보다 한 가지 더 가진 것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그게 곧 번뇌이다. 번뇌는 중생을 미혹되게 하고 수고롭게 하며, 시시때때로 괴롭힌다.

인간의 모든 고통이 알고 보면 다 이 번뇌에서 온다. 그런데 어느 날 홀연히 이 번뇌가 구름 벗겨지 듯 다 사라지니 마음이 지극히 고요하고 싱그럽다. 그러한 입정의 상태에서 체감되는 평온하고 맑은 심경을 청풍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인간은 두 가지 고뇌 속에서 살아간다. 하나는 인생의 현실적인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한 번뇌이다. 재물을 얻으려는 욕구, 남여 이성간 애정의 욕구, 권력을 행사하고 남으로 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으려는 욕구 등 다양한 욕망들이 번뇌를 일으켜 끝없이 괴롭힌다. 여기엔 공부인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에 따라 집념이 더 강하고 약한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고 또 하나의 번뇌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로 부터 오는 번뇌다. 죽음의 문제 죄고의 문제, 불안과 고독의 문제, 무의미한 삶 등 이러한 실존의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나려는 고민으로 부터 한시도 마음의 평온과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의 번뇌가 다 사라지고 공적영지한 자성에 들어가니 그 경지가 얼마나 맑고 시원하겠는가? 이건 마치 갈증에 헤매인 나그네가 추운 겨울에 뜨거운 국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마음 달 심월이 번뇌에 가리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어둠의 미혹 속에 살아오다가 어느 날 홀연히 번뇌가 사라지고 공적영지한 자성광명이 나타나 20여년이나 품었던 답답한 의심 덩어리들이 한 생각에 밝아져 천하의 모든 사리간의 이치가 눈앞에 환하게 드러나니 그 밝은 심경을 '만상이 자연히 밝아졌다'라고 표현하신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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