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니콜 키드먼의 인상은 차갑다. 그러나 그 냉정한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것들은 뜨겁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사랑과 욕망, 야망과 용기로 버무려진 인물들을 거침없이 연기했다. 그녀가 스스로 야심가라고 밝혔듯이, 그게 그녀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도 수상했고, <피플>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호주출신의 그녀는 눈부신 아메리카드림을 이룬 것이다. 그녀의 성공은 전남편 톰 크루즈의 후광이 아닌 그녀 자신의 열정의 결과물로 보인다.

11년 동안 톰 크루즈의 아내로서 아무 탈 없이 행복했던 그녀가 갑자기 이혼했다. 그들이 헤어지기 바로 직전의 영화가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샷>이다. 앞날의 불행을 예고하듯, 그들 부부는 이 영화에서도 부부로 나온다. 아르투어 슈니츨러 소설 <꿈의 노벨레>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아이즈 와이드 샷>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서 욕망은 "가장 명징하고 가장 순수한 영혼의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위험천만한 돌개바람을 칙칙하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덩어리"로 정의하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하루 일과를 마친 부부가 아이를 재우고 침대에서 가벼운 잡담을 나누다가 심각한 대화로 빠져든다. 아내는 남편에게 여행 때 잠깐 스친 해군장교에 대한 성적인 환상을 고백한다. 만약 그 남자가 자기를 원했다면 단 하룻밤이었을지라도 남편과 자식을 포기하려고 했다는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남편은 충격을 받는다.

정숙한 아내가 그런 상상을 하다니, 남편은 고통스러워한다. 밤거리를 배회하고, 난교파티에 참석하고, 창녀의 유혹에 빠진다. 그런데 아내의 욕망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방황에서 돌아온 남편은 또다시 그녀가 꿈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섹스를 했다는 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제 남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냉정할 필요가 있다. 방황하면서 섹스를 즐긴 남편이나 현실의 억압된 욕망을 꿈속에서 즐긴 아내나 오십 보 백보다.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일 뿐, 그들은 똑같이 욕망으로의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일까. 이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그들 부부는 쇼핑하면서 화해한다. 그러나 서둘러 봉합해버린 상처부위처럼 그들 관계가 위태롭게만 보인다. 결국 그 상처가 현실에서 터졌다. 가장 모범적으로 보였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부부는 영화촬영이 끝나자마자 이혼해버린 것이다. 욕망에 있어서는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 스텐리 큐브릭의 냉소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이혼은 일상이다. 이혼의 상처가 벌써 아물었을까. 니콜 키드먼은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물랑루즈>에 출연한다. 독일유학시절에 나는 파리 몽마르뜨 언덕 밑으로의 나이트클럽의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다.

낭만과 퇴폐가 버무려진 물랑루즈! 영화 <물랑루즈>는 그 클럽의 역사를 무대로 하고 있다. 니콜 키드먼은 여기서 창부의 역할을 맡아 한 남자를 사랑하다 죽는다. 관객들은 사랑할 때가 가장 아름다운 그녀의 사랑에 눈물을 흘렸으리라. 지금 그녀가 궁금하다면, 그녀를 통해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면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오스트레일리아>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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