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시어머니를 비롯하여 시누이들도 잘 아는 집으로 시집을 왔다. 시어머니(심타원 윤정천법사)는 젊으실 때부터 훈타원 양도신 종사님의 연원으로 입교하여 평생을 원불교에 다니시는 낙으로 살고 계신다. 그리고 손 아래로 네명의 시누이가 있는데 한명은 전무출신이고 또 한명은 정토회원이며 나머지 둘은 재가교도이다.

나의 신혼 초, 이른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남편은 서울에 있는 직장에서 주말에만 내려오고 나 혼자 시집살이를 하던 때였다. 저녁식사 설거지 까지 하루 일을 다 마치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피곤한 몸을 조금 쉬고 있었다. 그 무렵 시어머니는 저녁마다 교당으로 백일기도를 다니고 계셨다. 시아버님과 큰 시누이는 내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교당에 다녀왔으면 하는 눈치였다. 이 눈치를 알면서도 나는 춥고 피곤하여 교당에 가지 않은 적이 있었다. 이 때 동갑내기인 큰 시누이가 "그럴 줄 몰랐다"며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였다.

큰 시누이는 나와 같은 해에 결혼하여 또 같은 해에 첫아이를 낳았다. 서울에서 살다가 명절이나 여름휴가 때에 시집에 가면 속이 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시어머니가 친 손자 보다 같이 살고 있는 외손자들을 더 예뻐하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얼마나 속이 상하였던지 친정에 다녀오는 길에 어린 아들을 안고 광한루 앞 길에서 한참동안 울었던 적도 있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의 입장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큰 시누이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장벽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수년 전부터 이 마음의 장벽을 없애려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섭섭함이나 미운 감정의 찌꺼기를 없애려고 적공하였다.

지난 해 여름 소록도에서 가족 모임이 있었다. 나는 이 때가 기회다 싶어 큰 시누이를 꼭 끌어 안으며 지난 날의 일들은 모두 잊고, 앞으로 서로 재미있게 살자고 하였다.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남아있던 장벽이 말끔히 녹아나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많이 있어도 선뜻 남에게 잘 나누어주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서 뒤 늦게 시어머니의 입장이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러 면에서 시어머니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이가 사람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동안 본의 아니게 남들에게 잘못하였던 점들이 자꾸만 생각난다. 살면서 실수한 점들도 새록 새록 생각나기도 한다.

나도 이제 며느리 볼 때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몰라도 시어머니에 대한 섭섭하였던 그동안의 감정들이 모두 다 풀어졌다. 시어머니, 시누이들과 나의 인연은 참으로 지중한 인연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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