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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 고문국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 특별기고 / 고문국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 고문국 총장
  • 승인 2009.02.27
  • 호수 14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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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교무들의 머리모양 강요만 해야 하나"

원기20년(1935) 입교하여 서울대 물리학 교수, 노스다코타 주립대학 교수, 서울대부총장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과학상과 석류장을 수상하였으며,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에 선임되었다. 원기73년 수위단원에 피선되었고, 원기85년 종사 법훈을 서훈하였다.

▲ 마음공부 스티커

ㆍ무조건적인 유지보다 시대와 사회환경에 알맞게 해야
ㆍ논의마저 터부시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
ㆍ안목과 식견 넓혀 원불교 100년 맞이해야 할 듯


며칠 전 우리 미주선학대학원과 필라델리아 교당을 방문한 서울의 명사 교도 K선생이 이곳 여자 교무들의 머리모양이 변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더란다. 긴 머리를 빗어 낭자를 단 모습이 아닌 단발머리의 여자 교무들과 처음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 분은 한참 동안의 변명 아닌 설명을 들은 뒤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갔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이 곳을 떠나 갔다고 한다.

현재 미주 동부교구 여자 교무들 몇 분이 긴 머리를 자르고 간편한 머리모양으로 바꾸었다. 의복과 머리 모양을 전통적 한국 여성의 것으로 유지하려는 지도층의 강한 만류가 있었겠지만 세계 교화의 일선에서 외국인들에게 저항감을 덜 느끼게 할, 간편한 차림을 찾아보고자 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일단 머리모양부터 바꾸어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분들의 퍽 과감한 실천을 처음 대했을 때 옛날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 당시의 사회 규범을 어렵게 깨고 단발 하셨던 정황이 회상되고, 여자교무에 대한 우리 교단의 여러 문제들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모든 성인 남자들은 상투를 틀고 여자들은 현재의 여자교무들과 비슷한 긴 머리로 쪽을 지어 비녀를 꽂고 낭자를 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었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의 일부인 머리(모발)를 함부로 자르지 않는다는 전통적 효(孝) 사상에 바탕 한데다 침략자 일본인들이 소위 단발령을 내리니 머리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일제침략에 항거하는 애국 애족 행위로도 간주되었기 때문에 머리모양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주위의 동년배들(김성수 전 부통령, 김병로 전 대법원장 등)이 속속 단발을 하고 신학문의 길을 택하였는데도 당신 조부님의 엄격한 지침을 어기지 못하고 신학문을 외면한 채 상투를 틀고 초야에 묻혀 사시게 되었다. 아버지는 뒤늦게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음을 간파하시고 동생 두 분을 당신 조부님 몰래 단발시켜 학교를 보내 후일 사회에서 크게 활동하게 하셨지만 자신은 한학자로 은둔생활을 계속하셨다. 그러다, 당신 조부님이 돌아가신 후 얼마를 지났을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1935년경에 어떤 계기로 상투머리를 자르고 소위 하이칼라 머리를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 아버지에게 일어난 큰 변화에 퍽 놀랐다. 아버지는 상당기간 식구들 대하기를 좀 쑥스러워 하시면서도 간편해진 머리 손질을 은연중 즐기심이 역력하였다. 상투를 튼 긴 머리를 감거나, 비듬이 많은 머리에 빗질하는 번잡을 면하게 되어 해방감마저 느끼셨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의 일은 그보다 훨씬 뒤늦게 일어났다. 1945년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1950~53)을 거치고 70세를 넘기실 무렵 낙상으로 팔에 골절상을 입으셨다. 머리손질을 손수 할 수 없으니까 마침 방문중인 외손녀의 도움을 받았었다. 외손녀가 귀찮아서 그랬는지 늙으신 할머니를 해방시켜드리고자 하였던지 가위로 할머니의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버렸단다. 불의에 일어난 일이라 망연질색하셨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외손녀의 당돌한 행동은 우리 어머니의 여생을 대단히 편하게 해드렸다. 어머니는 주위 상류층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그 짧은 머리로 90세의 세수를 마치셨다.

나는 부모님들이 대수롭지 않은 사회규범과 전통에 얽매여서 얼마나 불편을 감수하고 고민하셨던가를 회상하면서 우리 여자교무들의 머리모양에 대한 교단의 인식수준이 우리 부모님 당대의 보수상류층의 그것과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머리모양이 복장과 함께 외모의 품격을 나타내므로 남녀 전무출신에 대한 어떤 규범이 필요하다고 하겠지만 이것이 무조건 보수 전통을 유지하는 쪽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환경에 알맞은 것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현재의 여자 교무의 복장과 머리모양은 교단초창기의 우리 나라 신여성(新女性)들을 원형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구타원 이공주,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님들, 당시로는 제1세대 신여성들이신데 당시로는 짧은 치마라고 비난 받았던 그 분들의 복장과 머리모양을 본 받은 것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일 것이다. 내가 1939년에 총부에 들려 대종사님을 뵈었을 때 젊으셨던 구타원님의 모습이 내 머리에 생생하다. 그 때는 소위 파마머리가 없었다. 모든 여성은 혼인하면서 낭자를 틀었다. 대종사님과 남자선진님들은 그보다 훨씬 앞서 상투를 자르셨을 것이므로 총부에서 상투머리는 보지 못했다.

우리교단은 지금 원기100년을 앞두고 교화 대 불공과 주세교단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세계교화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들에게 보이는 원불교 이미지는 너무나 한국적이라 한다. 그리고 남녀평등과 여러 차별을 철폐한 대종사님의 제자들은 남녀불평등과 차별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남자 전무출신은 결혼, 복장, 머리 모양 등에서 자유스러운데 여자 전무출신들은 정녀라야 하고 복장, 머리 모양도 규격화 하고 그것도 1세기 전쯤의 한국적인 것을 고수하고 있으니 서구인들에게 이질적이고 접근하기 거북한 한국의 후진적인 종교단체로 비친다.

우리사회에서도 갓을 쓰고 긴 두루마기를 입는 민족종교단체들에게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주세불, 주세교단을 외쳐봐도 우리교화가 외국인 지식층과 주류사회에 미치지 못하면 한갓 공염불, 헛구호에 그치고 만다. 나는 우리 교단이 원기 100년을 계기로 5,6백년 결복기로의 도약을 이룩하려면 여러면에서 일대개혁이 단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종교학자들에 의하면 많은 종교단체의 창시자가 당시의 사회상을 뒤바꾸는 대 개혁으로 창건하지만, 그 후계자들은 보수성을 탈피하지 못하므로 곧잘 침체에 빠진다고 하는데 우리 교단이 그러한 전철을 밟아서야 되겠는가? 대종사님은 세계의 어느 국가, 사회 종단보다 앞서서 남녀평등권을 채택 시행하였다고 자랑할 수 있는데 100년을 맞이하는 현재에 와서는 오히려 사회나 타 종단에 미치지 못하고 여자전무출신의 결혼문제나 복장, 머리 모양 면에서 명백한 차별을 유지하고 그 문제들에 대한 논의마저 타부시하고 있는 경향이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남녀차별만이 아니라 교단의 여러 제도적 경직화를 탈피하지 못하고 한국적인 것, 우리식인 것만 고집한다면 어찌 세계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쉽겠는가? 실제로 우리 교법(특히 평등사상)에 매료되어 우리 미주선학대학원을 찾아 전무출신의 길을 찾으려던 미국인 여성이 교단의 경직된 제도와 관례를 접하고 크게 실망하여 이탈한 예를 보았고, 또 국내 교당에서 유년회 학생회를 거쳐 교무로의 꿈을 기르던 여학생들이 교단의 남녀 차별의 현실을 접하고 그 꿈을 접은 사례를 얼마든지 보고 있지 않는가? 현재 여성들은 우리 교단의 초창기와는 달리 사회 각 방면에서 대 약진하고 대성공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교단은 여자 전무출신들에게 '정숙하고 청초한' 옛모습을 상징하는 복장과 머리모양을 강요만 하고 있어야 하겠는가? 긴 머리와 낭자의 그 머리는 번잡할 뿐더러 부스럼이나 목디스크(낭자를 매달음으로써 오는 스트레스 때문임)를 유발하기까지 한다.

나는 우리 교단의 출가, 재가 교도 모두가 안목과 식견을 넓혀 주세교단으로의 도약을 촉진할 수 있기를 염원하면서 며칠전 다녀간 K선생이 앞장서서 이곳 여자교무들의 머리모양 변화를 고무하고 격려하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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