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4월10일, 1500여명의 승객과 700여명의 승무원을 태운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대서양을 향해 영국의 사우스 햄프턴 항구를 출발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항해 4일 만에 빙산과 충돌하여 대서양의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다. 타이타닉호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승객과 승무원의 대부분이 죽었다. 이 비극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이다.

1998년 12월, 파산직전의 IMF-대한민국에 <타이타닉>이 상륙했다.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는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몰려갔다. 영화광도 아닌데 여러 번 보며 감동을 느낀 사람들도 많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금반지 목걸이 등으로 금괴를 만들어 수출해 벌어들인 달러가 <타이타닉>에 실려 가고 있다며 미국영화 안보기 시위를 벌이는 애국자들도 등장했다. 한 푼의 달러가 아쉬운 우리의 눈으로 보면 속이 뒤집어질 일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라가 어려울 때 위정자들은 손쉽게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문화적 국경이 해체되고 있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무조건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아무튼 이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단숨에 그 당시까지 한국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타이타닉>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울 때 바다건너 제70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제임스 카메론이 이 영화로 작품상 등 11개 부문의 상을 수상하면서 그 소감으로 "나는 이 세상의 왕이다"라고 외쳤다. 패권주의적이다. 교만의 극치다. 그가 미국 대통령이라도 출마하려고 작정한 것인가? 그러나 그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

이 한 편의 영화로 영화관 상영을 비롯하여 음반, 게임 등 32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 이외에도 할리우드의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시켰다. 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가. 그러나 내가 흥분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의 수상소감에 감춰진 의미에 감동한 것이다.

그가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던진 "나는 이 세상의 왕이다"라는 메시지는 꿈과 희망과 열정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분명 <타이타닉>은 침몰직전의 IMF-대한민국에 꿈과 희망과 열정을 일깨웠을 것이다.

미키 루크라는 배우가 있다. 나는 그를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나인 하프 위크>에서 처음 봤다.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멋진 외모였다. 그의 연기하나하나가 섹시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얼마가지 못했다. 폭력과 섹스뿐인 그의 영화는 그를 삼류배우로 전락시켰고, 나는 그가 얼굴하나로 날로 먹는 배우라는 인식으로 더 이상 그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의 삶은 처절했다. 그는 배우에서 복서로 전환했고, 그 후 폭력, 마약, 이혼, 성형부작용 등 온갖 추문을 일삼았다. 그는 그렇게 할리우드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그가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레슬러>에서 레슬러로 돌아왔다.

나는 개봉첫날 조조를 봤다. 일그러진 얼굴. 그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감동했다.

이 영화에는 나락으로 떨어졌던 자기 삶에 대한 회한이 가득했고, 그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 자기반성과 자기고백이었다.

나처럼 누군가가 미키 루크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 누군가는 꼭 보아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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