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 파산직전의 IMF-대한민국에 <타이타닉>이 상륙했다.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는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몰려갔다. 영화광도 아닌데 여러 번 보며 감동을 느낀 사람들도 많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금반지 목걸이 등으로 금괴를 만들어 수출해 벌어들인 달러가 <타이타닉>에 실려 가고 있다며 미국영화 안보기 시위를 벌이는 애국자들도 등장했다. 한 푼의 달러가 아쉬운 우리의 눈으로 보면 속이 뒤집어질 일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라가 어려울 때 위정자들은 손쉽게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문화적 국경이 해체되고 있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무조건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아무튼 이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단숨에 그 당시까지 한국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타이타닉>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울 때 바다건너 제70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제임스 카메론이 이 영화로 작품상 등 11개 부문의 상을 수상하면서 그 소감으로 "나는 이 세상의 왕이다"라고 외쳤다. 패권주의적이다. 교만의 극치다. 그가 미국 대통령이라도 출마하려고 작정한 것인가? 그러나 그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
이 한 편의 영화로 영화관 상영을 비롯하여 음반, 게임 등 32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 이외에도 할리우드의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시켰다. 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가. 그러나 내가 흥분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의 수상소감에 감춰진 의미에 감동한 것이다.
그가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던진 "나는 이 세상의 왕이다"라는 메시지는 꿈과 희망과 열정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분명 <타이타닉>은 침몰직전의 IMF-대한민국에 꿈과 희망과 열정을 일깨웠을 것이다.
미키 루크라는 배우가 있다. 나는 그를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나인 하프 위크>에서 처음 봤다.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멋진 외모였다. 그의 연기하나하나가 섹시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얼마가지 못했다. 폭력과 섹스뿐인 그의 영화는 그를 삼류배우로 전락시켰고, 나는 그가 얼굴하나로 날로 먹는 배우라는 인식으로 더 이상 그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의 삶은 처절했다. 그는 배우에서 복서로 전환했고, 그 후 폭력, 마약, 이혼, 성형부작용 등 온갖 추문을 일삼았다. 그는 그렇게 할리우드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그가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레슬러>에서 레슬러로 돌아왔다.
나는 개봉첫날 조조를 봤다. 일그러진 얼굴. 그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감동했다.
이 영화에는 나락으로 떨어졌던 자기 삶에 대한 회한이 가득했고, 그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 자기반성과 자기고백이었다.
나처럼 누군가가 미키 루크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 누군가는 꼭 보아야 할 영화다.
- 기자명 송동윤 감독
- 입력 2009.03.13
- 호수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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