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장류에는 과학이 숨어있다

고추장은 단맛, 신맛, 매운맛, 감칠맛 함유
좋은 메주는 좋은 콩이 필수

 

 

요즈음 슈퍼마켓에서 일상 사 먹는 우리의 전통식품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생각해보면 손에 꼽을 만한 게 별로 없다. 전통주의 경우 우리에게는 약주, 탁주, 과일주 등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현재 우리 주류 시장에는 소주, 맥주, 위스키 등으로 채워져 있다. 한과나 떡이 우리의 전통 음식이라고 생각되었으나 어느덧 시장은 빵이나 과자로 완전히 도배되어 가고 있다.

카레의 원조는 인도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먹는 카레는 인도식이 아닌 일본식 카레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본의 아지노모토라는 식품회사에서는 간단히 전자렌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우리의 김치찌개와 불고기를 개발하여 시판 중에 있고 미국의 일식집에서는 우리의 갈비가 일식으로 둔갑하여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전통음식 중 상품화 가능성이 있는 우리의 음식은 무엇인지?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 선결이 되어야 하는지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는 간장과 고추장은 일본의 양조법을 도입하여 우리 입맛에 맞게 부분적으로 개선 및 보완하여 대규모 생산방식을 통하여 만들어져 대부분의 가정에서 소비되고 있다.


전통식품인 고추장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우리 한국인의 창작품이며 외국인의 기호에도 어울리는 좋은 소재이다.

고추장은 매운 맛, 단맛, 신맛, 감칠 맛이 한데 어우러졌다. 이것은 우리 조상의 발명품으로 주 원료는 메주(콩), 쌀, 고춧가루, 소금이다. 간장이나 된장은 완전히 콩으로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이를 만드는 메주를 이용하여 또 다른 음식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가 없는 혁명적 사건이다. 좋은 고추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메주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인데 여기에 보이지 않는 과학이 숨어 있다. 고추장 메주는 삶은 콩이나 혹은 콩과 쌀을 함께 쪄서 만드는 데 여기에 곰팡이의 일종인 황국이나 세균인 고초균 및 기타의 미생물 등이 메주를 띄우는 과정에 자라 쌀의 주성분인 전분을 분해하는 단맛을 내주게하는 효소나 콩의 주성분인 단백질을 분해하여 감칠맛을 내주는 아미노산을 만드는 효소를 내게된다.

순창에서는 동지 전후에 메주를 띄우는 다른 지역과는 더운 계절인 여름의 끝 무렵에 고추장 메주를 만드는데 메주 내부를 보면 청국장처럼 실이 많이 생성된 것을 볼 수 있어 더울 때 잘 자라는 고초균이 많이 관여함을 알 수가 있다. 순창지역에서는 고추장 메주를 콩과 함께 쌀을 넣어 만드는데 쌀을 넣음으로써 전분 분해효소의 활성이 높아지는 것을 우리는 미생물학 교육을 통하여 쉽게 알고 있으나 우리의 선조들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얻은 산 지식이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메주에 쌀밥을 넣어 삭혀 여기에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어 숙성을 하고 있으나 보다 숙성을 빨리하기 위하여 쌀밥에 엿기름을 넣어 당화를 시킨 후 졸여 여기에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어 숙성을 시키는 방법이 보편화 되었다. 누군가는 식혜를 만드는 방법을 여기에 적용하였는데 선조들의 응용 감각이 탁월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의 장류는 주로 황국균을 이용하여 제조하나 최근 일본의 과학자들이 고초균이 단백질 분해결과 생성되는 글루타민을 감칠맛의 주요성분인 글루탐산으로 분해하는 주요 미생물로 확인하여 우리의 전통 장류에 관여하는 고초균의 역할을 규명함과 동시에 전통장류가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짐을 확인하였다.

메주와 된장은 신라시대에 왕실의 혼수품목으로 기록되어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고추장의 역사는 고추의 유래와 마찬가지로 논란이 있다.

이성우 교수는 고추가 임진왜란을 통하여 일본에서 도입되었으며 고추장도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하고 또 정경란의 다른 학자는 고추는 고구려시대에도 재배되었고 고추장도 1460년에 발간된 <식요찬요>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고추장은 그 영양적인 면에서 어느 나라의 전통 음식 못지 않게 뛰어나다. 고추장에는 단백질, 지방, 비타민B2, 비타민C, 카로틴 등과 같이 우리 몸에 유익한 영양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고추와 고추씨의 함유성분인 캡사이신(capsaicin)은 고초균에 대한 항균 작용이 있다고 한다. 아울러 베타 카로틴, 비타민 C가 다량 함유된 고춧가루는 항돌연변이 및 항암작용이 있다.

최근 고추의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의 항암효과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데 기존에는 발암물질로 오인받기도 했던 캡사이신이 최근 들어 각종 관련 실험 결과 위에서 생성되는 대표적 발암물질인 니트로소아민의 돌연변이성을 억제하는 한편 암 세포 처리시 아포토시스를 통한 암 세포의 자살을 유도해 항암 작용을 나타낸다고 보고되고 있다. 또한 캡사이신은 혀의 미뢰를 자극해 식욕을 촉진시키고 체지방을 분해하고 열을 발생시키며 감각 신경의 바닐로이드(Vanilloid)수용체를 경유한 신경흥분 및 탈감각 작용과 항박테리아 작용 등 다양한 생리활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이의 생리작용을 이용해 통증 및 염증성 질환, 요실금 등의 치료제로 개발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부산대학교 박건영 교수는 동물실험의 경우 고추장을 투입하였을 때 항돌연변이 효과가 증가하는 것을 밝혀냈으며 특히 전통고추장의 효과가 큰 것으로 보고한 바 있다. 고춧가루에서 추출한 회분은 곰팡이 독소인 아플라톡신의 돌연변이효과를 저해하며, 또한 고춧가루는 건위제로 피부를 자극하여 혈액순환을 돕는 역할도 한다.

또한 고추장에 존재하는 자연에서 유래된 유산균의 일종인 락토바실러스는 정장작용을 하며 고추를 먹으면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이 비위를 가라 앉히고 안정감을 주기도 하며 땀이 나도록 하여 노폐물의 배설을 촉진하여 감기 등 각종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최근 일본의 연구자들이 밝힌 바에 의하면 고추를 섭취하면 고추중의 캡사이신이 칼슘(Ca2+) 존재하에서 캡사이신 수용체(TRPV1)를 활성화시키고 그 결과 땀과 아드레날린 분비가 촉진이 된다.

이에 따라 포도당과 지방의 분해가 가속화되어 다이어트 효과를 나타낸다. 캡사이신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 물질은 고추의 캡사이신 이외에도 생강의 진저롤(gingerol)도 약하지만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  한금수 소장(순창군 장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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