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생활이 에너지입니다"

한결같은 신앙심으로 일관
원무사령 후 교화 매진

둥그런 얼굴에 순박함이 묻어났다. 몇 차례 약속 시간을 확인한 후 만난 수원교당 전덕선 교도회장(64). 오후 8시30분. 늦은 시간이었지만 웃음으로 반가움을 표시한다. 소법당에서 나눈 대화는 온통 자신의 기도생활과 중국 동관 교화이야기였다. 그만큼 신앙심으로 무장되어있다는 표시다.

"저는 기도생활을 통해 법신불의 은혜와 위력을 많이 입었습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큰 어려움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는 것도 기도 덕분입니다. 기도가 곧 에너지입니다. 동관 교도들과 제 주위 사람들에게도 기도생활을 권합니다."

기도의 위력을 체험한 그의 말에 힘이 묻어난다. 그는 요즘에도 아침 6시면 어김없이 기도식순에 맞춰 오롯한 마음으로 기도식을 진행한다. 중국 교도들도 그의 기도생활을 반가워한다. 그가 중국에 있으면 이상하게 장사가 잘된다고 할 정도.

"그들도 기도생활이 몸에 배어 든 것 같아요. 좋은 일이 있으면 기도비를 챙겨줘요. 그들이 주는 기도비는 수원교당에 내고 있어요."

교도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기까지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여행 안내를 통해 알게 된 인연들과 주변 인연들이 법회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을 위해 향로, 촛대, 목탁, 죽비 마련에서부터 가정 봉안식에 이르기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은 지극정성이었다.

"교도들은 제가 가는 곳마다 같이 행동합니다. 저처럼 닮고 싶다고 말하기도 해요. 이 말을 들을때 마다 책임감을 더 느낍니다."

17세 되던 해인 원기47년 광주교당에서 입교한 이래 한결같은 신앙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그에 대해 교도들이 바라본 감상은 경외심이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그의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교도들이 작년 11월 조촐하게 치러진 봉볼식 장면들을 기억하는 것도 그의 한결같은 정성과 연관이 있다.

"생활관으로 쓰고 있던 4층 공간을 법당으로 꾸미고 봉불식을 했어요. 남편의 도움과 가족들을 비롯 인연이 있는 재가 출가교도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어요."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작은 법당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뤄진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남편인 김봉운 교도의 숨은 공덕이 자리했다. 원기91년 동관교화 개척을 위한 원무 사령장을 받은 이후 차근 차근 준비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본보 1367호에 발표된 '원기100년, 중국에서 쓴 일기'에서도 그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중국에 있게 되면 4축2재 행사와 법회를 보고 있습니다. 법회때는 주로 교사와 교리에 대해 이야기 하지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1년에 5개월 정도 거주하는 동안 만나는 교도들에 대한 그의 믿음은 확고하다. 지금은 비록 미미한 교도들이지만 교법에 바탕해 가정의 평화와 지역사회의 평화를 이루는 주역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신성품 11장 법문인 '봄 바람은 사(私)가 없이 평등하게 불어 주지마는 산 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아 자라고, 성현들은 사가 없이 평등하게 법을 설하여 주지마는 신 있는 사람이라야 그 법을 오롯이 받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유승인 교구장은 "교단과 교당이라면 이유가 없이 한결같은 신성을 바치는 분들이고 힘 닿는데까지 교단사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9시30분 심고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법신불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묵상심고 후 저녁기도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힘차 보인다. 교화불공을 위한 그의 서원이 담겨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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