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경산종법사께서 신년법문에서 <대종경> 성리품 15장을 소개하시며, "금년에 이 성리를 많이 연마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내용은 "…선승이 사뢰기를 '도를 듣고자 하나이다. 도의 있는 데를 일러 주옵소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도가 그대의 묻는 데에 있나니라.' 선승이 예배하고 물러 가니라."

우리 교도들도 좀 더 깊게 공부할 것을 주문하신 것이다. 그래서 서툴지만 이 성리법문에 대하여, "도를 묻고 있는 당처를 보아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도가 육근을 통해서 작용하고 있으므로 작용하는 마음의 당처를 관하라는 말씀이다. 도를 찾는 마음을 놓은 그 마음을 일러주기 위하여 제불조사께서는, '할-', '호떡이다', '연꽃을 들어 보임', '무무역무무 비비역비비' 등 격외의 표현으로써 한 생각 이전의 언어도단을 눈치 채도록 하였다.

공부를 많이 하신 교무님들은 모두 성리를 통하고 계시겠지만, 대부분의 교도들은 성리를 연마한 바가 드물기 때문에 성리라 하면 먼 나라 이야기 같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법강항마위 정도가 되어야 입에 담을 수 있는 높은 경지의 공부라고 생각하여, 아예 관심이 없거나 여쭤 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일 것 같다. 그러므로 교무님들이 가끔씩 교도에게 의두나 성리에 대하여 나름대로 공부한 바를 말하라고 하면, 교도는 덜컥 겁부터 나고, 공부가 부족해서 부끄럽고, 원불교공부가 어렵고 등등 오히려 교무님과 교도사이의 소통에 방해가 되므로 교무님의 입장에서는 교도를 대상으로 의두와 성리를 문답감정하기가 편하지 않으니, 이런 상황에서는 자연히 설교중심으로 지도할 수 밖에 없다.

설교는 매우 중요한 공부이지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전달식이므로 개별적 쌍방향의 눈높이 공부와 같은 효과를 얻기 힘들다. 많은 교당에서 그나마 강연이나 감각감상을 발표하는 것은 다행이다.

원불교의 교법대로 공부를 실천하면 사반공배의 탁월한 공부효과를 얻는다고 대종사께서 말씀하셨는데, "20~30년 교당 다녀도 공부가 안 되어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교도들의 입에서 편안하게 나오는 것은 교도들의 무명업장이 그만큼 두텁다는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본다.

또한 "교도가 묻지 않는데 어떡하느냐"하는 대답이 편하게 나오는 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부모들이 자식이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을 보고 "나중에 후회할거다. 알아서 해라"하고 대충 끝내지 않고 어쨌든 공부시켜 보려고 여러 방법으로 애쓰듯이, 법문 전달자가 아니라 교도들의 부모라는 심정을 가지면 종법사 대행으로서 교무의 위상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

교도의 입장에서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교도를 지도하는 교무의 숙명이며, 그렇기 때문에 교무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 아닌가.

어쨌든 문답·감정·해오 공부를 살려내어서, 최소한 감각감상과 의두·성리연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개인적이든 일요일 오후든 교당별 여건에 맞게 장을 마련하면 좋겠다.

현실적으로 일요일 오후에 교구의 각종 행사나 회의가 많은 것이 걸림돌이지만 "매 예횟날에는 모든 일을 미리 처결하여 놓고 그날은 교당에 와서 공부에만 전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를 실천할 방안을 어떻게든지 찾아보자. 막상 장을 마련해도 공부할 교도가 적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모로 관심을 일으켜보자.

해야 할 것은 해보면서 문제점은 머리를 맞대어 해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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