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를 한의 역사라 한다. 이 말은 어릴 때부터 한을 쌓고 살아온 임권택 감독에게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그의 영화 <씨받이>와 <서편제>를 감상하여 그의 한을 살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임권택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영화가 <씨받이>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는 어느 나라에도 유효한 보편적인 소재로서 대리모제도를 다뤘다는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자식이 없는 종갓집에 씨받이 여인이 불러들여진다. 이 여인은 종갓집의 원대로 아들을 낳아주지만 곧 바로 쫓겨난다. 그로부터 1년 후 그녀는 종갓집의 주위를 배회하다가 한을 삭히지 못하고 마을 입구에 서있는 고목나무에 목을 맨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행복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모두 '죽은 자가 산자보다 우대 받던 시대'의 희생자들인 것이다.

<서편제>는 한과 그 한이 소리로 승화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소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내는 자기 수양딸을 소리꾼으로 키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이 서린 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내는 딸의 눈을 멀게 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딸의 소리에는 여전히 한이 없다. 그 후 사내는 딸의 득음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딸은 떠돌이 생활을 한다.

한편 사내의 폭력으로 가출했던 의붓아들은 누나를 찾아 나서고, 결국 어느 주막에서 만나게 된다. 두 남매는 밤새 소리를 하면서 그동안 쌓인 한을 풀어헤친다. 그것은 통곡인가 싶더니 한을 넘어서는 소리로 들려온다. 사내가 그토록 원했던 득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비로소 한 가족의 용서와 화해가 가능해진다.

<씨받이>나 <서편제>는 소재만 다를 뿐 하나의 영화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불덩이를 안고 살아간다. 그 불덩이는 한이고, 한을 삭히는 인내고, 그 한으로부터 탈출 아니면 죽음이다. 씨받이 여인이 그랬고, 소리꾼 사내가 그랬고, 그의 수양딸이 그랬다. 그들 모두의 삶은 임권택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한을 쌓는 일이요, 한을 쌓는 일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영화를 만드는 일이요, 영화를 만드는 일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다.'그에게는 결국 한을 쌓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과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하나인 것이다.

4월이다. 이제 어디를 쳐다봐도 겨울의 흔적은 없다. 대문 앞 벚나무도 다시 꽃을 피워 하얀 천막을 만들고 축제를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

벚꽃이 눈처럼 흩날릴 때 여인 같은 이웃집 목련이 다시 기다림의 순수를 알릴 것이다. 그러나 4월은 '잔인한 달'이다. 탄생과 생명의 환희가 넘쳐나는 계절에 많은 사람들은 미쳐온다. 벌써 누군가는 제주4·3을 지나 5·18광주에 와 있을 것이다. 갑자기 어디선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시위대의 구호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비장하게 시작되고 보리밭 같은 하늘에 시위대가 흔들어 대는 태극기가 한꺼번에 펄럭일 것만 같다. 거리마다 자욱한 최루탄에 피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오늘도 그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은 한을 쌓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