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花煎 , 음식에 자연을 담다

진달래 화전은 봄철 춘곤증 예방
화전을 꽃떡 · 꽃부꾸미 · 꽃지지미로 불림

 

화전(花煎)은 찹쌀 반죽에 진달래나 국화꽃 등 먹을 수 있는 꽃이라면 무엇이든 재료로 사용하여 기름에 납작하게 지진 전, 또는떡이다.

화전은 꽃떡, 꽃부꾸미, 꽃지지미, 꽃달임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간식이나 별식으로 꿀이나 조청에 발라 달콤하게 먹는다. 모양이 너무 예뻐서 음식이라기보다는 풍류와 눈의 호사를 위해 만든 음식이 아닌가 생각되며, 달콤한 맛이 또한 가히 일품이다.

철마다 다른 꽃으로 만들 수 있어 계절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으로 봄에는 진달래나 하얀 배꽃으로 화전을 지지고, 여름에는 노란 장미화전 또는 흰 찔레꽃 화전, 가을에는 황국(黃菊)과 감국(甘菊) 꽃잎을 얹어 국화전을 지진다. 꽃이 없는 겨울에는 미나리, 쑥잎, 대추, 석이 등으로 꽃모양을 만들어서 화전을 지져 먹었으니 사철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화전은 화전놀이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화전놀이는 고려시대 부터 행해진 전통적인 풍습이다. 특히 음력 3월3일은 삼짇날이라하여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로, 집안의 우환을 없애고 소원성취를 비는 산제를 올렸다. 산과 들에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 봄이 되면 부녀자들이 개울가에 번철과 찹쌀가루 등을 들고 나가서, 꽃을 따서 그 자리에서 화전을 지지고, 꿀물이나 오미자즙에 진달래를 띄운 진달래 화채 등과 함께 먹으며 봄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를 즐겼다. 진달래로 만든 화전은 '두견화전(杜鵑花煎)'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궁녀들이 중전을 모시고 금원(창덕궁의 후원, 비원이라고도 함)에 나가서 화전을 부쳐 먹으며 봄의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다.


가을이 되면 삼짇날과 비슷하게 국화꽃과 잎으로 만든 국화전을 만들며 산이나 계곡을 찾아 단풍을 즐기기도 하였다. 국화전은 국화로 빚은 국화주와 유자와 배로 만든 유자화채 등과 같이 먹기도 하였다. 삼짇날 처럼 음력 9월9일에 양이 겹치는 중양절, 또는 중구일에 이 풍습이 행해졌다. 이날은 손이 없는 날로 안동지방에서는 무슨 일이든 마음 놓고 하며 추석날 햇곡식이 없어서 못 지낸 차례를 지내기도 하였다.

화전은 이렇듯 자연과 자신을 일치시키려 했던 옛 어른들의 자연관이 음식에 까지 나타난 대표적인 본보기라 할 수 있으며 계절을 즐기며 먹는 절식이었다. 또한 혼례와 회갑 등 경사스러운 날 큰상을 차릴 때 쓰는 장식용 음식이었다. 잔칫날 음식을 높이 고여 '고배상'을 차릴 때 갖은 편을 직사각형으로 크게 썰어 네모진 편틀에 차곡차곡 높이 괸 후 화전으로 웃기를 얹어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화전 만드는 법은 우리의 옛 조리서인 장씨부인이 쓴 <음식디미방>과 빙허강 이씨가 쓴 <규합총서>에 나와 있다.

<음식디미방>의 '전화법(煎花法)'에는 '찹쌀가루에 거피한 메밀가루를 조금 넣고 두견화, 장미화, 출단화의 꽃을 많이 넣고 눅게 말아 끓는 기름에 뚝뚝 떠 넣어 바삭바삭하게 지져서 한 김 나갈 때 꿀을 얹어 써라'고 하였다.

<규합총서>의 '꽃전'에는 냉수에 반죽하면 빛이 누르고 기름이 많이 드니 소금물을 끓여 더운 김에 반죽하여 가루를 쥐어 치쳐 헤어지지 않을 만치 반반한 접시에 국화 모양으로 빚고, 밤소 넣어 족집게로 가는 살을 박아 쓰라. 진달래, 장미는 많이 넣어야 좋고 국화는 너무 많이 들면 쓰다. 국화송이는 푸른 꼭지 없이 하고 가루 묻혀 지져도 좋다'고 하였다.

진달래 화전은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여 봄철 춘곤증의 예방에 도움이 된다. 진달래꽃은 플라보노이드와 폴리페놀 등 항산화 물질이 들어 있어 우리 몸에 활력을 주고 피부노화 방지 등 젊음을 유지해 주는데 도움을 주며, 찹쌀가루는 비타민 B6가 풍부하여 계절의 변화로 오는 우리 몸의 스트레스를 예방해 준다.

화전은 홍석모(洪錫謨)가 160년 전쯤의 서울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 에 삼짇날의 절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시나 노래가사 등에도 등장하여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박힌 음식임을 알 수 있다.

평안부사로 부임하다 개성 장단의 황진이 무덤을 찾아 술과 시조 한 수로 제를 올렸다 해서 파직 당한 백호 임제(白胡 林悌 1549~1587)가 읊은 시조로 보아 우리 선조들은 화전을 지져 먹는 일이 흔했던 모양이다.

'개울가 큰 돌 위에 솥뚜껑 걸어 놓고
흰가루 참기름에 꽃전 부쳐 집에 드니
가득한 봄볕 향기가 뱃속까지 스민다'

박경종이 글을 쓰고, 김동진이 곡을 붙인 우리 가곡 '화전놀이'에도 나오는 것을 보면 60여년 전 까지도 화전놀이가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진달래 꽃피는 봄이 오면은/ 나는야 언니 따라 화전놀이 간다/ 아늑한 골짜기에 자리를 깔고/진달래 꽃전을 같이 지진다/ 달님처럼 둥그런 진달래 꽃전은/ 송화가루 냄새보다 더 구수하여/ 나는야 언니하고 같이 먹으면/ 뻐꾸기도 달라고 울며 조른다.

 

 

이영은 교수
원광대학교 생활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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