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요에서, 농요農謠 에 대한 회상

농요는 일의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른 노래
기계화 작업은 농요의 기능 상실

 

▲ 농부들이 '모심는 노래'를 부르면서 모내기를 하는 장면.

 

농요란 논이나 밭에 나가 노동을 하면서 남녀간에 일의 능률을 높여주거나 흥을 돋우기위해서 부르는 노래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사를 주업으로 삼아서 살아온 농업국이기 때문에 주로 논농사를 지으면서 유지해왔다.

요즘에 와서는 산업사회로 인하여 인력으로 해오던 노동력을 기계화로 대체하기 때문에 예전에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논에 모심을 때 부르던 상사소리나, 논매기 할 때 불러오던 농요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노동요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전북 서부평야 지대는 호남평야의 중심지답게 벼농사를 많이 지어온 농도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농절기에는 들에 나가 못자리를 하고 모가 자라면 모를 논에 내어 심고 주기별로 초벌에서 네벌의 만두레까지 김매기를 하고 나서야 논일을 끝내왔다. 모를 심을 때는 마을마다 품앗이 일꾼들이 모여서 윤번제로 일손을 돕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생활이 어려워서 일꾼들이 어린 식솔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두렛굿 풍장을 칠때면 모두들 어깨춤이 저절로 솟아나왔다. 그때는 비록 실생활은 어려웠지만 정신적인 행복의 지수는 높았던 걸로 기억된다.

필자는 어린시절을 정읍 태인에서 보냈다. 그곳은 반타원형의 넓은 들을 산들이 아스라이 감싸고 있고 한가운데로는 동진강이 젖줄처럼 흘러가면서 들판 논을 적셔주고, 석양쯤이면 농군들이 일손을 재촉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먼 들판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던 농요는 지금도 귓전에 맴돌고 있다.

못자리판에서 물논에 모를 낼때면 마을마다 남정네들이 부족해서 남녀 공동으로 모를 심게 되는데 그때는 주로 못줄을 띠어가면서 심어갔다.

초벌 논매기를 할 때는 오른쪽 무릎을 논바닥에 꿇고 큰 논호미로 골골이 흙을 파 뒷셔가면서 느린 가락의 진양조로 부르게 되고, 두벌을 맬때는 허리를 추어올리고 기어가는 자세로 약간 빠른 중모리 가락으로 노래를 하면서 호미를 뒷 궁둥이 허리띠에 꼽고 맨손으로 풀을 매면서 부른다.

세벌을 맬때는 중중모리 가락으로 해서 보다 빠른 동작으로 두 번 맬때 되살아 난 잡초를 뽑으면서 아주 빠른 동작으로 매가는데 이를 몬들가락 논매기라고도 한다.

점심참에 주인집에서 새참이나 밥을 내오게 되면 배불리 먹고나서 쉬는 참에 상머슴과 중머슴에게 씨름도 시켜보고 논매기 시합도 시켜보면서 장난끼 어린 희열을 느끼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마을앞 모정의 느티나무 밑에 놓여있는 들독을 어깨너머로 넘기게 하는 기운자랑을 하면서 상하등위를 정해주기도 하였다.

필자가 1974년에 발굴해서 연습시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연해서 문공부 장관상을 받아온 옥구 대야면 탑동 들노래는 농요중에서도 뛰어났다.

메김소리에 탁월했던 고판덕씨를 단장으로 마을 농요단원들이 불렀던 '탑동 들노래'의 과정을 살펴보면 논매기때 부르는 '만경산타령', '오호타령', '방아타령', '자진산타령', '에야소리', '등짐소리'의 과정으로 나누어 불렀다.

'에야소리'는 타지역의 만두레 소리에 해당되는 소리로 한 소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메(고판덕씨의 메김소리); 소쿠리 장사 테두르디끼
받(농요단 여럿이 받는소리); 위야 어허
메; 망건 장사 골 두리디끼/받; 위야 어허
메; 고기잽이 그물치디끼 / 받; 위야 어허

'에야 소리'는 논에서 김매기할 때 마무리 작업에서 부르는 소린데 일을 끝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싸오 소리'라고도 부른다. 이때는 논을 매는 일꾼들이 좌우로 나누어서 논을 빙 둘러 원형으로 좁혀가면서 매가는 형태가 마치 소쿠리 장사가 둥글게 테를 두르듯이, 망건 장사가 둥근 틀을 만들듯이, 고기잡이가 고기를 잡기 위해서 원형으로 그물을 치듯이 둥글게 논가운데로 향해서 마지막 김을 매어가라는 뜻이다.

탑동 들노래는 고판덕 노인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단원들이 후렴을 받는 선후창 방식으로 불러왔다.

필자는 전국민속경연대회(1978~1984년)에서 민속놀이를 발굴 고증하여 네차례의 종합대상인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았다.

순창군 '금과 농요'는 선창자인 이정호씨를 중심으로 70여명의 단원들이 김봉호 단장의 지도로 열심히 연습하여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20여 차례나 초청을 받아 그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순창 '금과 농요'의 구성은 '물품기 소리'로 시작하여 '모찌는 소리', 모심는 '상사소리'가 있고, 초벌 논매기때 부르는 '문열가', '연꽃타령'이 있고, 두벌 내지 세벌 맬때 부르는 '오호타령', '싸오소리' 만두레할 때 부르는 '장원질 소리'로 끝을 맺는다.

순창 농요의 특징은 노래의 곡조가 다양하고 독특한 변음현상을 가져오면서 노래부르는 사람들 각자의 소리가 우렁찬 가창력으로 최선을 다하는데 있다.

마지막 김매기 때 불러온 '에이사호'한 소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메김소리(이정호씨); 떠들어 온다, 떠들어 온다, 점심밥바구리가 떠들어 와
받는소리(농요단 합창); 에헤라 사호

메; 휘휘 둘러 쌈들을 싸세/ 받; 에헤라 사호/ 메; 순창 원님은 곤달노 쌈이오/ 받; 에헤라 사호/ 메; 임실원님은 해우쌈이오/ 받; 에헤라 사호/ 메; 남원 원님은 천엽쌈이오/ 받; 에헤라 사호/ 메; 고추장 장사는 순창놈/ 받; 에헤라 사호/ 메; 감장사는 임실놈/ 받; 에헤라 사호/ 메; 징장사는 운봉놈/ 받; 에헤라 사호/ 메; 바짝 바짝 우겨 주소/ 받; 에헤라 사호/ 메; 밟아라 밟아 주인도 밟고/ 받; 밟아라 밟아 영감도 밟소/ 메; 사호! / 받; 사호!/ 메; 사호!/ 받; 사호!/ 메; 사호! / 받; 사호!

다함께 '에이사오 소리'가 끝난 후에는 일을 마치고, '장원질 소리'를 다같이 구성지게 부르면서 동네 골목길을 거쳐 주인집으로 들어가면서 상머슴을 주인집 소 등에다 거꾸로 태우고 간다.

이때 봉지없는 삿갓을 거꾸로 씌우고 양손에는 소주한병에다 안주감 닭한마리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가는데 이때 드리운 저녁 노을에 지는 해와 노래소리는 한폭의 수채화 같은 포근한 느낌을 준다.

▲ 박순호
원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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