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와 복을 구하는 결정적 요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업(業)을 지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육근의 작용을 통하여 업을 지어 가는데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공부가 작업취사 공부이다.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불의(不義)란 무엇인가? 정의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로, 일심(一心)이 동(動)하면 자리이타(自利利他)로서 모두를 위하는 정의로 나타나고 잡념이 동(動)하면 나만을 위하는 불의로 나타나는 것이다.

삼학은 병진해야 한다. 정신을 수양하여 수양력을 얻어야 사리연구를 잘 할 수 있고 사리연구를 잘 하여야 정의와 불의를 판단할 판단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와 불의를 판단한대로 정의는 취(取)하고 불의는 사(捨)하는 공부가 작업취사 공부이다.

선(善)이 좋은 줄은 알되 선을 행하지 못하며, 악(惡)이 그른 줄 알되 악을 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불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제거할 수양력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 일 그 일을 당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연구력이 부족함 때문이며, 굳은 습관에 끌려 실행이 뒤따르지 못하는 까닭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시일기를 하고, 주의 조행을 지키며 참회를 하고, 솔성요론을 행하며 계문을 지키는 공부를 하는 것은 무슨 일이든 오래 오래 계속하면 힘을 얻을 수 있어서 모든 일을 할 때에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취사력을 얻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건널목을 건너려면 우선 멈추어서 건너도 되는지 살펴보고 건너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것이다.
멈추는 공부가 수양 공부라면 살펴보는 공부가 연구 공부이며 건너는 공부가 취사 공부라 할 수 있다.

멈추어서 살펴보아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며 건너도 된다는 판단이 섰으면 바로 건너는 실행이 되어야 한다. 바로 실행하지 못하면 다시 멈추어서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상황은 수시로 변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다시 멈추어서 좌우를 살피고 건너도 되는지 건너지 말아야 하는지를 판단하여 건너도 된다는 판단이 서면 바로 건너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사용하는 공부가 작업취사 공부이다. 마음을 알아야 마음을 잘 사용할 수 있으며, 마음의 힘이 있어야 마음을 잘 사용할 수 있다.

취사 공부가 우리들이 구하고자 하는 혜와 복을 구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므로 오늘도 정의는 죽기로써 행하고 불의는 죽기로써 하지 말아야···.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