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지혜와 숨결  현대인의 삶과 생활에 표현
한지韓紙

한국의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
세계화 위한 다양한 상품 개발해야

 

▲ 한지 뜨는 과정.

 

최근 들어 '웰빙' 트랜드에 걸맞게 자연친화적인 소재나 건강에 좋은 천연상품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지를 이용한 문화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상품으로 손색이 없는 한지는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를 나타내기에 적합한 소재이다. 요즘 한지 관련 패션쇼나 공예품과 생활용품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이러한 관심을 이끌고 있는 전통 한지에 대한 유래와 함께 우수성을 찾아본다.

■ 한지의 유래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3대 종이 고장이 있다. 경상도 경주와 의령, 전라도 전주가 그곳이다. 이중 경상도 의령에는 옛날부터 전하는 종이 설화가 있다. <의춘지(宜春誌)>나 옛날 기록인 <교남지(嶠南誌)>를 통해 알 수 있지만, 고려 때 스님 '설(薛)'씨의 이야기로부터 한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설(薛)씨에 대한 문헌적 고증 자료는 없고 다만 구전으로 전해오는 향우지인 <의령향우>에는 "천년전 고려 때 의령군 봉수면 서암리 국사봉 중턱에 약20년 전까지 터가 있었다는 대동사의 주지 '설(薛)'씨가 어느 봄날 닥나무 껍질을 흐르는 냇물에 담가 두더니 껍질이 물에 풀리면서 삼베 올처럼 섬유질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여 이를 손으로 주물러서 바위 위에 건져 놓았더니 종이와 같은 물체가 만들어졌다. 이것을 계속해 종이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 종이와 한지의 어원
종이는 대략 서기전 2세기경에 중국에서 발명되었다. 한나라의 채륜이 A.D 105년에 생인피 섬유를 사용하여 종이를 제조하는 방법으로 개량한 후 널리 전파되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지술을 도입한 것이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372년에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닥종이 뭉치 등로 미루어 종이의 역사는 1500~16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를 더욱 발전시켰고, 그 품질 또한 매우 우수함은 현존하는 최고의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증거라 할 수 있다.

종이라는 말은 한지 '지(紙)'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지(紙)' 의 어원은 '비단 견(絹)'에서부터 비롯된다. 중국에서는 종이가 사용되기 전 이미 비단에 글을 써왔다. '비단 견(絹)'자의 '실 사(絲)'변을 따오고, 글자의 씨앗이 된다는 이유로 '씨(氏)' 자를 합쳐 만든 글자가 '지(紙)' 이다. 또 종이라고 하는 말에는 서양 종이도 포함되므로 이를 구분하기 위해 옛날 중국에서 만든 종이는 한지(漢紙), 이것을 더욱 발전시킨 한국의 전통적인 종이를 한지(韓紙)라 부른다.

우리 고유의 한지는 질이 좋아 예로부터 국·내외에 이름이 높았다. 한지를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든 것은 바로 닥나무라는 재료의 사용이었으며, 이것이 마피와 죽피를 사용한 중국의 것과 크게 구별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 五>에는 '고려의 종이는 천하에 이름을 떨쳤는데, 그것은 다른 원료를 쓰지 않고 닥나무만을 썼기 때문이다. 그 종이가 매우 부드럽고 질기며 두꺼워서 중국 사람들은 고치종이라고도 했다'라는 기록이 있어 질이 좋은 닥나무의 사용으로 인한 한지의 우수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47년간 한지 만드는 일에 종사해온 김태복(62)장인은 전주 평화동 흑석골에서 14세 때부터 일을 배워 3대째 가업으로 이어왔으나 중국산 한지가 수입되고부터 가업을 정리하고, 현재 전주 한지박물관에서 관람객들에게 전통한지 만드는 방법을 시연해주고 있다.

"한지를 만드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한지를 백지라고도 했는데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것이라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특히 물이 좋아야 좋은 한지를 만들 수 있는데 완주 소양에서 만들게 된 것도 다 깨끗한 물이 풍부해서죠."

▲ 닥나무 껍질.
김 장인은 한지 만드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는 한지 만들기는 닥나무 수확부터 시작된다고 밝혔다. 닥나무 껍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매년 11월~다음해 1월 사이에 베어낸 닥나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닥나무를 큰 솥에 쪄서 껍질을 벗기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겉껍질을 벗겨내고 하얀 속껍질만 남기죠. 겉껍질이 붙은 채로 벗긴 것을 흑 또는 피닥이라 해요. 흑피를 철분이 없는 흐르는 냇물에 10여 시간 담가 두어 불린 다음 겉껍질을 칼로 벗겨 낸 것을 녹피, 푸른 중간 껍질까지 다 벗겨낸 것 백피라 합니다. 백피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하루 동안 물속에 담급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후 콩대나 볏짚을 태운 잿물을 넣고 하얀 속껍질을 4∼5시간 동안 충분히 삶아요. 삶은 속껍질을 맑은 물에 여러 번 씻어낸 후 잿물기가 빠지면 대나무 발에 올려서 다시 찝니다." 그가 이것을 기름기를 빼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종이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어 흐르는 물에 씻고, 햇볕에 말려서 표백을 한다.

"충분히 짠 다음 티를 고른 후 닥을 널따란 돌 위에 올려놓고 나무 방망이로 3~4시간 동안 곤죽이 될 때까지 두들겨 죽같이 만듭니다. 닥과 황촉규의 뿌리에서 추출한 즙액인 닥풀과 잘 섞어야 한지 본래의 특성인 강인함과 자연스러움이 나옵니다. 우리만의 독특한 전통적 제지법인 외발 뜨기 작업으로 좋은 제품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는 이어 곱게 풀어진 재료를 대나무 발로 건져 올려 400∼500장을 떠서 나무판에 쌓아 놓는 과정을 설명했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이 위에 판을 대고 돌로 눌러 1차 탈수시킨데 이어 압착해서 물이 다시 빠진 후 건조대에서 한 장씩 건조시키면 한지가 된다는 것이다.
▲ 닥을 돌에 놓고 두둘겨 죽을 만든다.

■ 전통한지의 우수성
역사와 함께 조상의 지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통 한지의 우수성은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지므로 부드럽고, 가벼우며 포근한 느낌을 준다. 또 여러 겹으로 배접하면 견고하고 단단하다. 요즘은 다양한 색지가 있어 개성 있는 한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 한지의 우수성은 '독일의 쿠텐베르크 성서가 5백년의 수명을 가지고 열람조차 불가능한 암실에서 모셔져 있는 반면, 수백 년 묵은 우리의 고서적은 박물관이나 도서관 또는 골동품 상가에서 나뒹굴다시피 해도 파손되지 않는다. 이처럼 조상들은 뛰어난 제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서구 문명의 유입과 더불어 한동안 우리 전통 한지가 소외되었다.

그러다 생활환경이 나아지게 되면서부터 한지의 수요도 개성화, 다양화되고 한지를 이용한 새로운 신소재들이 개발돼 한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지는 연해 보이면서도 질기고, 소박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서양 종이가 따라올 수 없는 따뜻함과 은은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통점은 한지는 모두 질기고 두텁고 단단하다는 것으로 호평 받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전통적 가치를 드높일 수 있도록 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문화상품들을 개발하는 것이 찬란했던 우리의 문화유산을 되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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