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을 추어보세~

탈은 주로 사람과 동물의 얼굴 모양
액을 쫓는 신선한 도구

 

 

한삼이 휘날리고 어깨춤이 들썩인다. 햇볕에 그을린 듯 갈색의 얼굴에는 자두만한 혹이 여기저기 나있고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코에 귀까지 찢어진 입 너머로 촌철살인의 재담이 툭툭 던져진다.

때로는 하얀 털을 휘날리며 사자가 춤을 추고 고개를 까딱거리는 붉은 원숭이가 재주를 넘는다.

입을 꼭 다물고 눈을 내리깐 채로 머리를 얌전히 올린 슬픈 얼굴의 젊은 여인이 있는 반면, 거무튀튀한 얼굴은 온통 반점 투성이에 납작한 코는 비뚤어지고 작은 눈은 찢어진 못생긴 할미의 얼굴도 있다.

이런 온갖 인물과 상상의 동물들은 오늘날 보통 '탈춤'이라고 부르는 탈놀이에 쓰이는 탈들이다. 현재 보존가치가 뛰어난 탈놀이는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원형이 보존되고 전승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다.

탈놀이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말이 다르고 그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황해도에서는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처럼 '탈춤'이라고 부르며 서울 인근에서는 송파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처럼 '산대놀이'라고 부른다.

한편 경상도에서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는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가산오광대 등 '오광대'라는 말을 쓰고 동쪽으로는 동래야류, 수영야류 등 '야류(野遊, 들놀음)'라고 부른다. 이 외에도 강릉단오제의 강릉관노탈놀이나 하회별신굿내의 하회별신굿탈놀이 등도 있다.

이처럼 탈이란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모양을 만들어, 주로 얼굴에 써서 분장에 사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탈놀이에서는 등장인물이 20명에서 30명 안팎으로 탈도 20개에서 30개 정도를 쓰게 된다.

그러므로 전국적으로는 최소 300여종의 탈들이 전하고 있는데, 똑같은 등장인물이라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예가 많다. 예를 들어 동래야류의 할미는 둥근 박바가지에 검은 얼굴, 납작한 코에선 콧물이 흐르는 칠칠맞은 얼굴에다가 동그란 눈을 하고 있지만, 하회별신굿의 할미는 눈 주위가 움푹 들어가고 광대뼈가 불거져 나온 마른 얼굴이다.

그러나 대부분 탈놀이에서 다루는 내용은 공통된 이야기가 많고 시대적인 전형성을 획득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지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탈도 많다. 말뚝이는 어느 지역이던 간에 코가 크고 얼굴은 붉으며 탈의 크기도 크고 힘센 청년의 모습이다. 한쪽 다리에 방울을 달거나 채찍이나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다니기도 한다.

할미는 못생기고 칠칠치 못한 억센 모습이다. 대부분 얼굴은 검고 코도 납작한데다가 때로는 콧물을 흘리기도 하고 입이나 코가 비뚤어져 있어서, 뽀얀 얼굴에 붉은 연지나 곤지를 찍고 앵두같은 입술에 초생달 눈썹을 한 작은어미(첩)와 대조를 이룬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지역의 탈놀이를 보더라도 그 인물의 성격이나 역할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탈은 원래 이렇게 놀이에 쓰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었다. '탈났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탈은 비정상적인 상태나 액운을 뜻하기도 한다. 탈놀이가 끝나면 탈놀이에 쓴 탈을 모두 불에 태워버리는 원래의 탈놀이 풍습에서 말해주는 것처럼 탈은 액을 쫓는 신성한 도구임과 동시에 액이 붙은 불길한 물건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탈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선사시대 암각화에서부터 나타나는 탈은 사람 얼굴 모양이거나 방패모양인데, 이는 제정일치사회의 무당이 쓰던 탈을 나타낸다.

사냥감의 영혼을 위로하거나 혹은 사냥의 안전을 위해 쓰기도 하였고 자연재해 등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현상에 대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도 썼다.

신의 말씀을 전하던 제사장은 평상시와는 달리 신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탈을 썼는데 이는 본 얼굴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신이 현현하였음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탈은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제의에 쓰이던 탈은 인간의 관심사가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변화하면서 점차 놀이로 세속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회별신굿탈놀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직도 탈놀이에는 그 제의적 목적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삼자락을 뿌리며 사방의 잡귀를 몰아내는 목중들이나 탈놀이 판을 정화하는 춤을 추는 오광대의 신장들이 그러하고, 오줌을 누는 할미나 할미와 영감의 성행위 등은 모두 농경사회에서 유래된 풍요제의의 흔적들이다.

탈은 지역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달라진다. 오동나무나 오리나무를 조각하듯이 깎아서 만들기도 하고 박바가지에 한지를 발라서 채색을 하거나 둥근 대소쿠리나 키 같은 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종이를 쓸 때는 간단히 오려서 쓰기도 하고 흙으로 만든 틀 위에 한지를 여러 겹 발라서 형상을 떠내기도 한다.

털을 붙이는 방법도 자주 쓰이는데, 하얀 토끼털로 나이든 할아버지의 얼굴을 표현하기도 하고 사람 머리카락 같은 것으로 눈썹이나 수염 등을 길게 붙이기도 한다. 하회탈은 나무로 만들어 매우 예외적으로 탈놀이가 끝나도 태우지 않고 따로 보관하지만 민속놀이에 쓰이는 탈은 대부분 종이나 박바가지 등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주로 쓰고 부분적으로 동물의 털이나 실 같은 것들을 붙여서 입체감을 표현한다.

예전에는 박바가지가 주위에 매우 흔했기 때문에 많이 썼지만 요즘은 보관상의 문제로 점차 나무탈이나 종이탈을 많이 쓰는 추세이다.

마을굿이나 정월보름 등 농촌사회의 대동놀이와 연관을 가지고 전승되던 탈놀이는 더 이상 새로운 내용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농촌사회의 변화및 붕괴와 더불어 소농 공동체 생활에 기반을 둔 민속문화도 그 현장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더구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탈놀이의 탈들이 대부분 원형보존과 원형전승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미하긴 하지만 요즘은 어린이들을 위한 창작 마당극에서 때로 탈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얼굴에 쓰지 않고 배우가 손에 끼워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창작극에서도 전통탈의 이미지를 일부 차용하거나 혹은 그대로 쓰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현재 보존되는 탈놀이가 조선후기 민중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타임캡슐 같은 것이므로 현재의 탈놀이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처한 사회적 종교적 상황을 드러내 준다.

특이하게도 요즘 신문지면을 통해 시위현장에 등장하는 가면들을 보기도 한다. 지난해의 촛불시위 때에는 조우커 가면을 쓴 시위대가 등장하더니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가면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가면까지 나왔다고 한다.

복면시위 금지법과 관련짓지 않더라도 이러한 현상 자체가 현재의 우리사회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말뚝이 탈이나 비비 탈이 가지고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현실비판 정신과 표현력은 외국영화의 브이가면을 훌쩍 뛰어넘는다. 더구나 우리 탈은 탈을 쓴 사람의 신분을 숨기는 역할보다는 탈을 쓰고 표현하고 싶은 인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쓴다.

탈을 쓰면 그 탈이 표현하는 인물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탈은 어떤 탈일까?

탈로써 액을 막고 사회적 탈을 꼬집어 비꼬고 조롱하면서도 탈로써 탈을 털어버리고 결국에는 죽음과 삶을 넘어서는 어울림으로 탈을 막아내던 조상들의 슬기가 필요할 때이다.

▲ 남진아 /
고성탈박물관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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