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 수행은 어떻게 하는가

동양종교는 신앙의 무게 이상으로 수행을 중시하는 점이 그 특성 중 하나이다. 우리 회상에서는 '공부'라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된다.

수행을 왜 할까? 수행의 목적이 어디에 있을까? 오래 살기 위함인가? 복을 많이 받기 위함인가? 일반 사람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신통력을 얻기 위함인가?
대종사께서는 각자의 인격을 양성하여 부처를 이룸이 목적이라 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행을 하여야 부처님과 같은 인격을 이룰 수 있을까?
대종사께서는 일원상을 수행의 표준적인 본보기로 삼아서 그 진리를 그대로 이어받으라 하셨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시니, 일원의 지극히 광명(光明)한 속성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우리도 천지 만물의 시종본말과 인간의 생로병사와 인과보응의 이치 등 일체의 일과 이치를 걸림 없이 알도록 했다(사리연구·혜·견성).

또한 일원의 진공(眞空)한 속성을 이어받아서 마음 가운데 일체 사심이 없고 애욕과 탐착에 기울지 않는 두렷한 성품 자리를 양성했다(정신수양·정·양성).

일원의 조화(造化)적인 속성을 이어받아서 모든 경계를 대할 때마다 희로애락과 원근 친소에 끌리지 않고 오직 바르고 공변되게 처리하자고 하셨다(작업취사·계·솔성). 대종사께서는 일원상의 진리를 진공, 광명, 조화의 세 가지 성격으로 설명하셨다(정전, 일원상의 진리).

진리의 바탕은 텅 비었으나 동시에 지극히 광명하며 그 광명은 빛으로만 존재함이 아니라 한량없는 세월에 생생 약동하며 온갖 조화를 나타낸다.

그러나 진리의 이 세 가지 속성은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기 위하여 말씀하신 것일 뿐, 실지는 나눌 수 없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일원상을 체받는 우리의 수행법은 삼학(三學) 중 어느 하나라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반드시 삼학을 병진하여야만 일원의 진리에 근거한 수행으로 그 진리를 완전히 체득할 수 있다.

일원상을 우리 내면으로 조명하면 '성품'이기 때문에(일원은 일체중생의 본성) 성품을 단련하는 공부가 일원상 수행이다.

이를 불교의 계·정·혜와 연결시키시고 또 유불선 사상의 정수인 견성·양성·솔성과 결부하여 말씀해 주셨다.
이 세 방면의 공부법을 편벽됨 없이 원만하게 수행하여야 일원상 진리와 합일하는 큰 인격을 이루게 된다.
<성지송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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