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들의 흔적 찾기 위한 거룩한 불사

기적 같이 이룬 만석평 땅 매입 불사
돈으로 살수 없는 정신적 자산 제공
잠자는 교도 깨우는 지역교화 한다

▲ 일반법회가 끝나고 오효명 교무와 교도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앙총부에서 익산교당과 계문초등학교를 지나 자동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드넓은 초록들판의 평야가 펼쳐진다. 만석평이다. 좌우로 열을 맞춰 심은 모가 이제 제법 땅기운을 받은 듯 푸르름이 더해만 가는 평야에 드문드문 마을이 모여 있으니 마치 넓은 초록바다에 작은 섬이 하나씩 떠있는 느낌이다. 그곳에는 익산시 만석동과 오산면 만성리, 그리고 영만리가 있다. 영만리 안쪽으로 만생령을 제도할 도솔천이 있으니 중앙교구 만성교당이 자리하고 있다.

만성교당 하면 '익산총부 건설 당시 엿 장사이며 만석평의 밭 갈기도 눈물겨워라.' 성가117장 '공덕 탑의 노래가 떠오른다. 이 성가는 부를 때마다 불사를 이루는 과정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짓곤 한다. 또 그 노랫말을 음미하면 교단 초창 당시의 간고했던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기에 더 가슴이 찡하기도 하다. 그래서 영산성지의 정관평과 익산성지의 만석평은 교단의 창립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정신적 토대가 되기도 한다. 특히 '만석평은 원불교 중앙총부 정착시(1924-1925년) 경제적 궁핍을 극복하고자 중앙총부의 한 유지대책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논을 빌려 몇 해 경작을 하던 곳이요, 선진님들이 눈물과 땀을 흘렸던 곳'이기도 하다.

만성교당은 올해로 창립37년. 교당 창립 이후 제일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만성교당 오효명 교무와 교도들.

만성교당 교도들은 올해 들어 교당 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6년간의 긴 숙제인 불사를 이뤄서이다.

교단의 과제였던 일을 만성교당에서 만석평 3필지의 논을 매입한 것이 그것. 다른 교당은 교당 신축불사를 이뤄 기쁨을 맞이하지만 그것도 어려운 농촌 교당의 환경에서 불사를 이뤘으니 그 기쁨이야 말할 것이 없다.

"선진들께서 '만석평'에서 '밭 갈기도 눈물겹다'고 한 만큼이나 이번 '만석평' 논 매입하는 불사도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7년 전 당시 좌산종법사님께 교도들과 함께 부임인사차 조실에 갔는데 법문 말씀을 하시면서 '만성교당에서 대종사님 당시 선진님들이 농사지으신 곳을 매입하라'는 하명을 하셨어요. 그것도 1년 안에 해결해 보라는 그 말씀을 받들고 와서는 몇일 간 잠을 못 잤어요. 교당 형편으로는 도저히 이루기 힘든 상황이었으니까요." 오 교무는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이후 오 교무는 교당에서 교도들과 회의를 한 후 "대종사님 당시에 선진들이 농사짓던 곳을 우리 만성교당에서 마련해 보자"고 결의한 후 교도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방법을 모색했다. 그 후 교당 교도라면 나이에 불문하고 3만원 이상은 다 함께 동참 하면서 시작했다.

교도들은 한마음이 되었다. '1백만 원 이상 하신 분들에게 탑에다 이름을 새겨 드리기'로 하는 권선문을 만들었다.

오 교무의 탁발 불사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건강도 따라주지 못해 눈물겹게 힘겨운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심남훈 교도가 1년 후에 1천만 원을 희사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심 교도는 당시 8세 때 대종사님을 친견한 교도로 신심과 공심과 공부심이 뛰어난 교도이다. 심 교도는 "20여 년 전에 '교당에 요양원이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돈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적금을 했어요. 1천만 원짜리를 들었죠. 당시 1천만 원이면 큰돈이었지만 요즘 1천만 원 가지고는 요양원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논 매입하는 데로 돌렸지요"라고 말했다. 그런 연유로 교당에서는 1년 만에 갚기로 하고 새마을금고에 1천만 원을 빚을 냈다. 마침 땅이 나와 2003년12월22일에 1차로 오산면 만성리455-3번지의 논 1필지3,967㎡(1천2백평)를 1년 만에 매입을 하게 되었다. 다들 '할 수 없다'고 했던 일을 해냈으니 모두가 '기적 같다'고 했다.

교당 봉공회 총무 겸 교당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조능현 교도는 "교당 경제를 잘 알고 있으니 당시에는 앞이 캄캄했어요. 우리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죠. 그런데 교무님께서 권선문을 가지고 각 교당을 다니면서 너무 애쓰셨습니다. 교당에 경제적으로 여유만 있다면 교무님의 공덕비라도 세워드리고 싶은 우리 교도들의 심정입니다"라고 하면서 목이 매었다. 그만큼 교도들은 교무님께 감사해하고 있다.

나만익 교도와 김흥인 교도는 "그렇게 힘들었던 일을 해내고 보니 '반갑고, 가슴 벅 찾습니다. 너무 기뻤어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정지현 교도는 "처음 살 때는 천하를 다 얻은 듯이 기뻤습니다. 교무님께서 '하면 된다'는 신념을 저희들에게 보여 주셨죠"라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우리 교당 형편으로는 기적 이었다"며 당시의 기쁨을 말한 정명륜 교도. 어려운 농촌 교당에서 이룬 큰 경사였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1차 목적이 이뤄지자 교무와 교도들은 자신감을 가졌다. '불사는 정성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또 오 교무는 3필지를 매입하지 않는 이상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추진해 나갔다. 그러나 1차보다 2~3차는 땅도 나오지 않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정성으로 일관하니 희사자들은 고인들까지 합해서 5백5십여 명이 거룩한 불사에 합력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2차는 2008년 2월4일 익산시 오산면 영만리 454-9번지의 논3,967㎡를, 또 3차는 익산시 오산면 영만리 1530-8번지의 논3,903,8㎡를 매입했다. 3차까지 3필지를 매입은 했지만 3필지가 다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있어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히 3차 때에는 저녁에 계약을 하고 나니 그 다음날 다른 사람이 그 논을 구입하려고 왔다가 그냥 갔던 아슬아슬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만성교당 교무와 교도들의 일심합력의 거룩한 불사는 많은 교도들에게 대종사님과 선진들의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기연을 마련하는 기쁨을 주었다.

▲ 일요법회 후에 만석평 땅 매입한 곳을 둘러보는 오효명 교무와 교도들, 전 교도들이 순례할 곳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근형 교도회장은 "교무님과 교도들이 큰일을 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3필지가 다 합해질 수 있도록 해서 순례지가 되어 선진님들의 정신을 체 받는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무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로 "3필지는 구입했지만 1백만원 이상 희사해 주신 분들에게 탑에 이름을 새겨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또 "이번 불사에 합력해 주신 재가출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꼭 전해 달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이성백 교도부회장은 "이제는 땅 매입한 정성만큼 교당 교화에 모두가 전력을 다해 잠자는 교도들을 일깨워 교당 교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며 "1인 연원 달기로 옛 모습을 되찾도록 다함께 노력하겠다"고 교화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만성교당은 앞으로 그동안 잠시 쉬었던 교당 교화를 위해 교도훈련을 실시 할 계획이다. 또한 잠자는 교도를 깨우기위한 연원달기 운동도 전개할 계획이다.

이렇게 6년 간 눈물겹도록 힘들게 3필지의 논을 매입한 것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 대종사님을 비롯한 선진님들의 발자취를 찾기 위한 거룩한 불사요, 많은 후진들에게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큰 정신적 가치를 제공해 주었다.

'앞으로 이 사업이 계속 이어져 반듯하게 해야 한다'는 오 교무와 교도들의 염원이 이뤄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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