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의 성스럽고 묘한 행실은 허공 같이 넓고 크며 맑고 깨끗하여 모든 법과 모든 상에 머물러 집착됨이 없다.

'부차수보리야(復次須菩提)야 보살(菩薩)은 어법(於法)에 응무소주(應無所住)하야 행어보시(行於布施)니 소위(所謂) 부주색보시(不住色布施)며 부주성향미촉법보시(不住聲香味觸法布施)니라.' 수보리야 또 들으라 보살은 일체 명상의 법에 주착하지 아니하고 마음과 말과 행을 나타내기에 유념하나니 이른바 색에 주착하여 나타내지 않는데 주의하며 따라서 성과 향과 미와 촉과 법에도 주착하지 아니하고 나타내는데 주의하나니라.

금강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보시이다. 수많은 중생심을 다 멸하여 청정한 마음이 되었다 하더라도 보시가 없으면 바람 빠진 공과 같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보시(布施)'란 널리 베푼다는 뜻으로 재물로 베풀고 법으로 베푸는 '재시(財施)'와 '법시(法 施)' 두 가지가 있다. 법이란 삼륜청정 즉 물건이나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정신 육신 물질로 베풀 때 청정한 마음으로 해야 함을 이름이다.

'수보리(須菩提)야 보살(菩薩)이 응여시보시(應如是布施)하야 불주어상(不住於相)이니 하이고(何以故)오 약보살(若菩薩)이 불주상보시(不住相布施)하면 기복덕(其福德)을 불가사량(不可思量)이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응당 이와같이 보시하면 상에 머물지 아니하나니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이 가히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육근 동작이 상에 주하고 보시하면 유루보시이며 주착하지 아니하고 보시하면 무루보시로 그 복덕이 한량이 없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동방허공(東方虛空)을 가사량부(可思量不)아 불야(不也)니이다 세존(世尊)이시여. 수보리(須菩提)야 남서북방(南西北方)과 사유(四維)와 상하(上下)의 허공(虛空)을 가사량부(可思量不)아 불야(不也)니이다 세존(世尊)이시여. 수보리(須菩提)야 보살(菩薩)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하는 복덕(福德)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불가사량(不可思量)이니라.'

수보리야 동방의 허공을 가히 생각하여 헤아리겠느냐? 못하겠나이다. 수보리야 남방·서방·북방과 사유와 상하 허공을 가히 생각하여 헤아리겠느냐? 못하겠나이다. 수보리야 보살의 상에 머무름 없이 보시하는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생각하여 헤아리지 못하나니라.

<만덕산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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