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은 음이며, 어머니·자비가 스며들어

우물 물은 피부병 등 큰 약국 역할
전통 우물은 썩지않음과 시원함 의미

 

▲ 김헌용 가옥 우물.
우물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눠진다. 하나는 맨땅을 깊거나 얕게 파서 물이 고이게 하는 토정(土井)이고, 두 번째는 바위틈 사이로 흐르는 물을 솟거나 고이게 하는 석정(石井)이다.

어릴적 동네 들어가면 여름날 공동우물이 나그네를 반겨주었고 그런 의미에서의 우물은 고향이미지의 대명사처럼 된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물에 관한 옛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어느 날 길을 가다 목이 말라 여인들이 물을 뜨고 있는 우물에 접근한다. 그리고 아낙에게 물을 줄 것을 요구하는데 그중에 한 정숙한 여인이 물을 떠주면서 두레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새 한입을 추가한다.

그 뜻은 빨리 마시게 되면 급체하게 되니까 천천히 마시라는 배려인 것이다.
나그네에게 이런 배려를 하는 여인이 누구인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단원 김홍도의 '우물가'를 보면 사내가 물을 먹는데 가슴을 풀어헤치고 물을 마시고 있다. 그런데 여인은 그 모습을 부끄러워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사내의 가슴에 난 가슴털이 그림에서 돋보인다. 작자 김홍도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재미난 풍속도를 그린다고 그렸지만 당시 우물 형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여인이 이성계의 첫째부인 신의왕후라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이렇듯 남녀 간에도 우물을 매개적 사건으로 하여, 역사와 전설이 생기거나 만들어 진다고 본다. 다시 말해 전설은 그 시대의 이야기가 세월을 낚으면서 연결되고 다소 변화하면서 첨가되는 언어의 향기이기 때문이다.

예전 교육방법에서 어릴적 제일먼저 공부하는 것이 사자소학이고 동몽선습 천자문 이렇게 공부를 한다. 물론 명심보감은 귀중한 참고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단계를 뛰어넘으면 소학을 정통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소학은 요즘말로 중학교 수준이 보는 텍스트북인 셈이다.

감수성 많고 사리판단을 하는 청소년기에 배워야 하는 학문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소학 명륜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외내부공정(外內不共井)' 이 뜻은 '밖과 안이 함께 우물을 사용할 수 없다'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우물도 안과 밖이 있어서 양반이나 세도가에서는 절대로 안채의 마당에 우물이 있고 또 밖의 마당에 있는 우물은 머슴들이나 말먹이 허드렛물 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여인들은 밖에 우물을 길러 가도 안 되고 또 밖에 머슴이 안채로 물 길러 다녀도 안 된다. 그만큼 조선시대의 세도 있는 사람들은 우물도 안팎으로 따로 사용하였으며 이런저런 지켜야 할 법도가 있었던 것이다.
▲ 단원 김홍도 '우물가 '그림.
우리는 흔히 속담으로 우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쉬운 사람이 샘물판다' '우물안 개구리' '우물에서 숭늉달라 한다' '물이 좋은 곳에 인심도 좋다'

물이 그지역의 인심과 사람의 삶을 이야기 하는 기준이 되는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물이 흐리다 또는 거기 물이 안 좋다' 하면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라는 뜻으로 이야기 되지만 예전에는 물자체 보다는 우물에 대한 형상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세상에 빗대어 말하곤 했다.

조선시대 우물 중에 최고의 우물은 어디에 있는 우물일까? 그것은 창덕궁 후원에 있는 어정(御井)이 으뜸이라고 한다. 물맛 좋고 시원하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우물이 용궁에 드나드는 출입구로도 인식 되었고 대정(大井)이라는 개성의 우물은 고려시대 현인들이 서해 용궁에 드나들던 출입구로 활용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큰 우물은 공주의 공주산성에서 발견된 연지(淵池)이다.
예로부터 전북 정읍(井邑)은 물 좋기로 유명한 샘골 동네이다. 그렇게 되면 인심은 더 말 할 것이 없어서 주변에 '고창수박'도 물맛으로 이어지는게 아닌가 생각되고 '복분자'도 땅심과 물심이 연결되어 제 역할을 하는가 싶다.

우물은 땅에서 솟는 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양으로 볼 때 음이며 어머니이고 자비함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그밖에 흘러가다 돌아서는 강물과는 그 본질부터가 다르다.

다시 말해서 땅에서 솟는 그 의미가 우리는 땅에서 곡식을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우물도 또한 우리에게는 은혜롭지 않을 수 없다. 그 맑고 깨끗한 물을 흘러보내지 않고 정갈하게 떠서 부엌 물 항아리에 넣고 잠시 물을 쉬게 한 뒤에 그 물로 사람들이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드는 귀중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들이 얼마나 우물을 소중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장 패륜적인 사람을 말할 때 우린 '우물에 침 뱉는 놈' 이라고 한다. 그렇게 우물이 신성시 되었고 우물은 인간과 가장 함께하며 생명을 이어주는 곳이며 그래서 우물을 깨끗함 또는 기도의 장소 등으로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지방에서 내로라하는 두 곳의 우물이 있는데, 청주의 초정 약숫물과 경기도 광주우물을 손꼽았다.

초정 약수물은 그 물맛이 산초열매처럼 톡 쏜다고 해서 초(椒:산초나무)자를 써서 초정약수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물은 우리몸을 살리기도 하지만 우리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피부를 낫게 하며 또한 피부에 부스럼이 날 때도 좋은 우물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세조는 피부병 때문에 고생을 하다가 초정약수가 피부에 좋다는 말을 듣고 기꺼이 충청도 초정약수터 까지 직접 내왕했을 정도로 우물 물은 일대 큰약국 역할도 했던 것이다.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기획전시 되고 있는 우물이 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옹기형 우물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옹기 우물통에 고기모양의 그림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그건 물을 뜨는 여인들이 항상 물고기를 보면서 무언가 생각하고 마음으로 간직하는 무언의 암시라고 할 수 있다.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물고기의 속성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물고기는 알로써 번식을 하는데 알을 한번 품으면 수천 마리가 탄생될 수 있다. 소위 '다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흔히 절에서 쇠북종과 운판 북 그리고 목어라고 하여 나무 물고기를 표현하면서 물고기는 눈을 뜨고 잠자는 것이 특이하기 때문에 수행하는 스님은 자고로 잠자지 말고 눈뜬 물고기처럼 정진해야 한다고 하는 뜻이 있는데, 우리가 지금 말하는 우물의 물고기는 여인들에게 많은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라는 상징을 전해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녀를 낳아도 백일 넘기기가 어려웠고 또 한 돌을 지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산의 상징을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먹어왔던 전통우물의 메시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첫째는 썩지 않음이고, 두 번째는 맑고 시원한 것을 의미한다. 우물물이 썩으면 먹을 수가 없음은 물론이요 그 존재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시대에 우물처럼 새롭고 맑으면서도 깨끗하게 존재하고 있는지뒤돌아보게 한다.
▲ 정은광 교무
원광대 박물관
학예사 ·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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