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전주는 선법의 시작과 끝

마음은 찰나에 구백 번이나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다. 찰나가 75분의1초이니 1초에 마음이 육만칠천오백 번이나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좌선이란 이러한 마음을 일경(一境)에 주(住)하여 모든 생각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편을 따라 코끝에, 미간(眉間)에, 배꼽에, 기식(氣息)에, 불상(佛想)에, 월륜(月輪)에, 부정관(不淨觀)으로, 화두에, 묵조(默照)에, 단전(丹田) 등, 주(住)하는 법이 수 없이 많으나 원불교에서는 단전에 주하는 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단전주를 택한 이유는 마음을 머리나 외경에 주하면 생각이 동하고 기운이 올라 마음의 안정이 잘되지 않으나 마음을 단전에 주하면 생각이 잘 동하지 아니하고 기운도 잘 내리게 되어 마음의 안정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전주는 수승화강이 잘 되어 건강상으로도 긴요한 법이라 일거양득하는 법인 것이다.

마음과 기운을 단전에 어떻게 주(住)할 것인가?

마음과 기운의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 마음과 기운은 따로 따로 작용하는 것이면서 마음이 가는데 기운이 따르고 기운이 가는데 마음이 따르는 것이며 마음과 기운은 원래 하나이다.

마음은 알아차리는 것이라면 기운은 느끼는 것이므로 단전에 기운이 주해지지 않으면 마음으로 알아차릴 수가 없고 마음이 단전에 주해지지 않으면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은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 생각이 일어나면 다른 생각은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다. 마음과 기운이 단전에 주해지면 다른 모든 생각들은 스스로 사라지고 단전에 주해진 그 마음과 기운을 바라보고만 있으면 주(住)한 바 없이 주하는 것이 되어 단전주하고 앉아 있으면 좌선이 되는 것이며 단전주하고 서 있으면 입선이 되고 단전주하고 누워 있으면 와선이 되며 단전주하고 걸어가면 행선이 되는 것이다.

단전주선(禪)은 지(止)와 관(觀)을 함께 하는 선법이다. 마음을 단전에 주하는 것이 지(止)법이라면 단전에 주해져 있는 그 마음을 바라만 보는 것이 관(觀)법이다.

성품의 원리가 고요하고 두렷한 마음을 정신이라 하며 그 정신에서 분별이 나타날 때가 마음이니 단전에 마음을 주하면 분별심은 사라지고, 단전에 주(住)해진 그 마음을 관(觀)하고 있으면 주착심은 없어지는 것이다.

단전주를 바르게 하는 것이 선법(禪法)의 시작이요 끝이라 할 수 있다.

<남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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