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주의 탈피한 무아봉공 실천 요청

젊은 세대에게 '창생제도'와 '사무여한'은 무엇일까?
법인정신의 실종은 원불교의 방향 상실로 이어질 우려 있어

▲ 15일 영산성지 법인광장에서 진행된 법인기도. 8월 영산에는 구인선진들의 법인정신과 창립정신을 체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교도들로 북적인다.
본사는 8월 법인절을 맞아 법인성사의 본질을 살펴보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해 종교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정신을 조명해 보고자 4주에 걸쳐 특집을 기획했다.

■ 글싣는 순서
▷ 1부 : 사무여한과 법인성사
▷ 2부 : 원불교적 죽음
▶ 3부 : 법인정신의 부활
▷ 4부 : 오진탁 교수의 죽음학

15일 영산성지의 중앙봉을 비롯한 아홉 봉우리에는 법인절을 기념해 구인 선진들의 법인정신과 창립정신을 체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재가출가 교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원불교에서 법인성사가 4축2재 중 하나로 기념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히 '백지혈인'이라는 이적이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다. 무아봉공과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창생제도하기를 서원하고 이에 대한 허공법계의 인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인성사를 가능케 했던 법인정신은 무아봉공과 사무여한이라는 이름으로 교단 초기부터 교단이 발전하는 데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또 원불교에 입교하면서 가장 먼저 받는 법명 역시 법인정신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이렇듯 법인정신은 교단 곳곳에 스며들어 원불교 정신을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교문을 열고 법계의 인증을 받은 법인성사 이후 90년이 지난 오늘날, 원불교는 국내 4대 종단으로의 도약, 군종승인, 원음방송 설립, 미주총부건설 등 많은 외형적 성장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교화침체, 교도의 고령화 등 교단적 위기를 맞으며 '법인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법인정신의 실종이 원불교의 방향성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연관이 있다.

대종사는 법인기도 중 "지금 물질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아홉 제자들을 향해 "각자의 몸에 또한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항상 명심하라"고 당부했다. 법인기도의 목적이 창생제도에 있고 그 실천방법이 무아봉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법인정신의 재해석 필요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창생제도'와 '무아봉공'이라는 단어는 그저 무겁고 딱딱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많은 청년 교도들은 "창생제도라는 말을 들을 때 도탄에 빠진 생령들을 제도한다는 사실이 머리로는 얼핏 이해가 가면서도 실질적으로 마음에 와 닿지 않고 먼 나라 이야기 같다"는 호소는 법인정신이 곧 교단의 창립정신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해 교정원 문화사회부 김덕수 교무는 "무엇보다도 법인정신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법인정신을 부활시키는 필수요건이라는 것이다.

한 예로,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 박 모 교도, 대학 입학 후 교우회(대학 내 원불교 동아리)를 통해 입교한 그는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교우회와 서대연 임원을 맡을 정도로 성실한 교도였다. 그러나 현재는 교당에 나가지 않는 이른바 '잠자는 교도'가 됐다.

그는 "원불교 사람들이 다 좋고, 법회에 가면 좋은 말도 많이 듣지만 그 뿐이다"면서 박 교도는 "사실 교당에 다니면서 내가 변화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는 교화현장에서 다른 이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의 제도에도 얼마나 소홀한지 보여주는 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김 교무는 "법인정신의 재해석과 더불어 '정기훈련 11과목과 상시훈련의 실행'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인정신의 목적이 창생제도라면 이를 위한 첫 관문이 '나'이고, '나'라는 대상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의 제도는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 원청40주년 행사에서 청년회원들은 구인선진의 뜻을 이어받아 힘차게 나아갈 것을 서원했다.
교단주의에서 탈피해야
이와 더불어 법인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교단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주장은 젊은 출가교역자들을 중심으로 그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원불교 대학원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예비교무는 "법인기도는 나와 우리의 국한에서 벗어나 전 인류를 위한 기도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무아봉공'이 개인의 사(私)를 없애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교단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전 인류를 위해 염원했던 법인기도의 무아봉공정신을 교단이 교단의 이익을 위해 그 범위를 축소하려 하는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다.

서경전 원로교무는 경산종법사 취임 당시 "늦었지만 종법사님을 선두로 전 교단에서 참회와 반성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불교 교단 지도층에서는 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주장해 오다가 고통을 받는 사람들 편에 서기보다는 언제나 정권의 편에 서 왔다"며 "교화의 침체가 이점에도 한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종교가 자기집단의 안위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그 종교는 사회로부터 외면 받는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사회와 세계 속에서 법인성사 나타나야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생활과 사회와 세계로부터 인증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남성조(여의도교당) 교도는 "창생제도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인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모두가 함께할 때 가능 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결국 사회와 세계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하고 이에 걸 맞는 대사회적 실천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현재 원불교가 교화·교육·자선이라는 3대 목표 아래 여러 방면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교화의 방편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며 "원불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어려운 이들을 돕고 은혜를 확산하려는 본래 사업의 목적에 맞게 사업을 운영하다 보면 교화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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