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야 보살이 이 법에…, 법이란 말씀은 경전만이 아니라 일체명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전부 법이라 한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틀어 법이라 한다. 일체 이 법에 응할제 주착한 바 없이 보시를 행할지니 보시한 육근동작을 심신간 부려쓰는 것이며 물건만 주는 게 보시가 아니라 물질도 마음도 육신도 육근동작도 베풀어 쓰는 것을 통틀어 보시라 하는 것이므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만약에 중생심이 없다, 주착함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보시란 것이 빠지면 바람 빠진 공이다. 바람 빠진 공은 아무 쓸모가 없다. 금강경에서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이 보시이다. 없다 없다 하면 아무것도 없어서는 안된다. 아주 적극적인 그 무엇을 하기 위해서 방해하는 무리인 잡동사니를 없앤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침마다 좌선을 하는데 휴휴암좌선문에 '부좌선자'로 '이 뭣꼬' 하고 앉아 있으라는 말씀이 아니고, '수달호지선' 즉 '지극한 선에 그쳐있으라'는 말이다. 잘 수행하는 사람은 수달호지선, 즉 지극한 선에 사무쳐야 한다. 만약 그것이 빠지면 좌선은 땔나무도 못 된다. 눈에 불이 나도록 또렷또렷해야지 멍청히 앉아 있어서는 안된다. 그 좌선을 해서 광명이 나도록 해야지 물에 술 탄듯 술에 물 탄듯 해서는 안된다.

'보시'란 이 마음이 지극해서 상도 없애고 주착도 없애라는 그런 말씀이다.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주착함이 없이 보시를 행할지니 색에 주해서는 보시도 행하지 말며, 성향미촉법에도 주착하여 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교단을 위해 일을 할 때 사를 바라서는 안된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도 주착하지 말고 해야 한다.

'삼륜청정'이란, 받은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깨끗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이 상에 주착하지 아니하고 보시하면 그 복덕이 한량없기 때문이다. 상에 주착한 보시는 유루보시로 빠져나가는 것이 있다. 상에 주착하지 아니한 보시는 무루보시로 샘이 없다. 뿐만 아니라 상에 주착한 보시는 복을 열푼어치 짓고 죄는 스무푼이나 짓는다. 그런 경우가 많다.

무상보시하면 곧 보살이니라. 이 구절에 머무른다 하는 것은 금강경 2장에서 수보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와같이 주하고 이와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 삼세에 뻗어 시방삼계에 두루 비침을 이름이다.

<만덕산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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