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창살

문창살은 건축가의 멋을 가장 잘 보여줘
안과 밖의 소통, 자연과의 합일 의미

 

▲ 불갑사 대웅전 꽃살.

 

우리에겐 창호(窓戶)라는 말이 있다. 창호라고 하면 창문과 방문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우리 전통 한옥에서 창은 빛과 공기를 받아들이는 곳이고 호는 방에 드나드는 문이다. 일반적으로 문이라고 하면 마당에 들어서는 대문을 일컫는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문과 창호를 서로 구분했다.

우리의 창호엔 창살이 있다. 창호에 꽂은 살대를 문창살 또는 창살이라 한다. 이처럼 살이 꽂혀 있는 창호는 살문(살창)이라 부른다.

문창살은 딱히 정해진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장인의 미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변형이 가능하다. 문창살은 전통 목조건축물에서 건축가의 멋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의 하나다. 전통 창호가 빼어난 자태를 지닐 수 있게 된 것도 문창살 덕분이다.

문창살의 역사와 종류
이 땅 한반도에서 문창살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그 한 예로 백제시대의 청동탑 조각을 들 수 있다. 네 면의 탑신 중앙에 문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있고 그 좌우로 창이 있는데 여기에 빗살이 보인다. 가야의 집모양 토기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문창살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이 무렵에 본격적으로 문창살을 설치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문창살은 다양하다. 단순히 수직과 수평으로 살을 교차시켜 정(井)자를 닮으면 정자살, 살의 모양이 아(亞)자를 닮으면 아자살, 만(卍)자를 닮으면 완자살(또는 만자살)이라고 한다.

또한 살을 45도, 135도(또는 30도, 150도)로 교차시키면 빗살, 이 빗살에 수직으로 살 하나를 더 넣으면 솟을빗살이라 부른다. 이 밖에 여러 개의 살이 다양한 직사각형을 만들어내는 숫대살도 있고, 여러 가지 모양이 두루 들어가 있는 복합형 또는 추상형 살도 있다. 문창살에 꽃 모양을 넣어 장식했다면 이를 꽃살이라고 한다. 빗살과 솟을빗살엔 꽃을 장식해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땐 빗꽃살, 솟을빗꽃살이라 부른다. 문창살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것은 바로 솟을빗꽃살이다.

가장 단순한 살창은 부엌에 많이 설치했고 띠살 완자살 아자살 등은 주택과 궁궐의 침전, 사찰의 요사채에 많이 사용했다. 꽃살은 궁궐의 정전이나 사찰의 대웅전과 같은 주요 건물에 설치했다. 문창살은 이처럼 그 자체로 건물의 분위기에 맞게 각각의 격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건축 의장에 있어서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절제와 균형, 단순함과 검박함
우리 한옥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문창살은 정자살이나 띠살, 완자살, 아자살 등이다. 이들은 별다른 장식 없이 단순하고 검박하다. 정자살 창호는 살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 세로 꽂아 놓은 것이다. 띠살 창호는 세로로 살대를 꽂고 창호의 위 가운데 아래에 다섯줄 또는 일곱줄의 살대를 가로로 꽂는 창호를 말한다.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거기 절제와 균형이 있다. 이것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의 미감이었다.

단순하기로 치면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전의 문창살을 꼽아야 한다. 장식을 하지 않고 길죽한 살대를 수직으로 설치했다. 습기 찬 바람이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보면 볼수록 담백한 간결미가 매력적이다. 게다가 경판전 건물인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앞뒷 면에 창호를 설치하면서 그 크기를 모두 다르게 했다. 그 변화가 단순한 살대에 생동감을 부여해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품격과 권위 돋보인 궁궐의 문창살
궁궐에 가면 여러 전각의 창호에서 다양한 문창살을 만날 수 있다. 궁궐의 문창살은 품격이 두드러진다. 특히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과 같이 궁궐의 핵심 건물에는 솟을빗꽃살을 꽂았다. 근정전의 앞면과 뒷면의 창호는 솟을빗꽃살로 장식했다. 이 빗꽃살 창호는 경복궁의 여러 전각 가운데 유일하게 화려하다. 하지만 고품격의 화려함으로 결코 사치스럽거나 현란하지 않다. 조선의 유교 미학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솟을빗꽃살문의 위쪽에는 간결하고 담백한 띠살이나 완자살 등으로 처리했다. 이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근정전의 창호는 장중하면서도 부드러운 미학을 연출한다.

경복궁에선 경회루의 창호도 눈길을 끈다.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경회루는 장중한 건축물이다. 누각 1층엔 48개의 돌기둥이 2층을 떠받치고 있고 2층엔 띠살 창호와 완자살 창호를 만들었다. 특히 완자살 창호는 단순한 듯하지만 깊이 있고 육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경복궁 건청궁 앞 향원정의 아자살은 좀더 경쾌하다. 육모지붕, 육각형의 건물이 다소 기하학적인 아자살창호와 참 잘 어울린다.

▲ 내소사 대웅보전 문창살.
극락정토로 가는 길, 사찰 꽃살창호
사찰의 창호는 더욱 다양하고 화려하다. 사찰의 전각에는 한국 창호의 모든 양식이 집합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가운데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역시 솟을빗꽃살이다. 경북 경주시 기림사 대적광전, 충남 논산시 쌍계사 대웅전, 대구 동화사 대웅전, 경북 예천군 용문사 대장전, 경북 청도군 운문사 비로전, 경남 양산시 통도시 적멸보궁, 전북 부안군 내소사 대웅전 등.

사찰의 꽃살 창호는 경북궁 근정전의 꽃살 창호와 또 다르다. 근정전의 꽃살 창호가 살대 자체를 이용해 꽃무늬를 표현했다면 사찰의 꽃살 창호는 살대의 교차점 위에 꽃무늬를 덧대었다. 그래서 좀더 사실적이고 좀더 화려하다. 색이 바랜 것은 바랜대로, 채색이 남아 있는 것은 또 그대로 찾는 사람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꽃살 창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찰의 전각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가운데 내소사 대웅보전 꽃살문을 보면, 건물 정면 여덟짝의 창호엔 꽃살이 가득해 꽃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방연속무늬로 끝없이 이어진 꽃들은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다. 오색 단청(丹靑)은 세월에 씻겨 내려갔고 이제는 속살을 드러내 나무빛깔과 나뭇결 그대로다. 참으로 담백하고 청아하다.

사찰 건물의 꽃살문은 종교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 꽃살에 붙은 창호지 틈새로 은은한 달빛이라도 새어 들어온다고 상상해보라. 속된 욕망은 소리 없이 흩어지고 금방이라도 해탈의 문이 열릴 것 같지 않은가. 꽃살문 하나에도 이처럼 지극한 불심과 예술혼이 깃들어 있으니…. 꽃은 불가(佛家)에서 진리를 상징한다. 꽃살문은 그래서 극락정토로 가는 통로인 셈이다.

문창살의 정신과 미학
우리네 전통 창호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문창살의 리듬감, 율동감이 전해온다. 거기 은근하지만 충일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전통 창호는 또한 한 건물에서도 다양한 창살을 허용해 변화를 꾀했다.

건축사학자인 주남철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창호의 살대들은 일본의 살대처럼 날카롭고 섬약하지 않고 중국의 그것처럼 기계적이고 딱딱한 것이 아니다. 도톰하게 살 오른 살대가 간결하고도 소박하며 정겨운 모습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문창살에는 창호지를 발랐다. 해와 달이 뜨면 살대의 그림자가 종이에 비친다. 시간이 지나고 해와 달의 위치에 따라 그 그림자 선과 모양이 달라진다. 그렇게 문창살이 만들어내는 무늬는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이는 안과 밖의 소통이자 자연과의 합일을 의미한다.
▲ 이광표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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