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7 : 그렇다면 부처님 대신에 일원상을 모시는 것 말고는 원불교와 불교가 다른 점은 근본적으로 무엇입니까?

답 : 한마디로 말하면 불교가 신해의 종교라면 원불교는 신행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깨침을 중시하는 혜의 종교라면 원불교는 실행을 중시하는 실천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불교는 영(靈)과 육(肉)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한다(靈肉雙全)는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서 중국의 2조 대사인 혜가는 눈 속에서 1주일을 서 있어서도 신(信)을 보일 수 없자 제1조 대사인 달마대사에게 팔 하나를 잘라서 받침으로서 믿음을 전달해서 제자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단비구법'이라고 하는데 이를 흉내내서 대종사 시대에도 서대원이라는 분이 혜가 대사와 같은 믿음을 보이기 위해서 손을 잘랐다가 크게 꾸중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손이란 일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데 손을 잘라 버리고 공부만 하면 그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영육이 쌍전해야 하며 수도자라고 해서 일도 안하고 무위도식하면서 선(禪)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낮에는 밭 메고 밤에는 공부해야 한다는 철저한 가르침을 실천하셨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대표적 화두가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면 불교의 대표적인 화두는 '이 뭐꼬?'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세상의 삼라만상에 대한 존재이유를 묻는 물음입니다.

그러나 원불교의 화두는 이와는 조금 다르게 '어찌할 꼬?'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기독교도라면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가가 가장 중요한 화두라면 불교는 삼라만상의 원리적 의미에 대한 의문이 강하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인고'가 화두가 됩니다.

원불교는 그것이 무엇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활용적 의미가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이 신앙이라면 불교는 신해이고 원불교는 신행이 되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들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신을 믿고 앙모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불교도라면 믿어서 깨치려는 것이 최후의 목표라면 우리 원불교도는 믿음과 수행이 같이 가야 하는 과제가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깨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손을 잘라도 되지만 우리 원불교는 수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손을 잘라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장적조 선진이나 여러 선조들이 대종사님 생전에 포교를 할 때 하신 말씀이 바로 '생불 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원불교와 불교의 차이를 글자 하나로 표현한다면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이라고 하는 '생(生)'자가 될 것입니다.
<한양대·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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