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명선이 되는 육대강령

앞에서는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 일원상과 신앙의 방법과 원리에 대한 말씀이었다면 이 장부터는 공부의 요도인 수행법에 관한 말씀이 시작된다.

익산교당 법좌에서 설하신 법문이 원기 21년 6월 회보 25호에 발표되었고 다시 교의품 18장과 19장으로 나누어 정리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육신 보전을 위하여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할 장소는 필수 요건이다.
어찌 먹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입지 않고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며, 거처할 장소가 없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3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대종사님께서는 정신을 단련하여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 데에 잠깐도 떠날 수 없는 필수적인 법이라 하시며 수양(일심), 연구(알음알이), 취사(실행) 3가지를 말씀하셨다.

이는 정신의 의·식·주(衣食住)라 할 수 있다. 즉 수양은 불교의 정(定)과 같으니, 마음을 정한 즉 심행처가 없어지고 정신이 온전하여지므로 육신의 편안한 집(安宅)과 같다.

연구는 불교의 혜(慧)와 같으니, 지혜가 밝은 즉 알음알이가 많아서 생사고락의 모든 이치를 걸림없이 앎이라 육신의 밥(法食)과 같다.

취사는 불교의 계(戒)와 같으니, 경계한다는 것은 무엇이나 부당한 일은 하지 말고 정당한 일만 함이라 육신의 깨끗한 옷(淨衣)과 같다.

육신과 정신이 합해있는 상태라야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산 사람이라면 육신의 의·식·주와 정신의 의(취사)·식(연구)·주(수양)가 반드시 모두 필요한 요건이 된다.

그러므로 대종사님께서는 육신에 관한 의·식·주와 정신에 관한 일심·알음알이·실행을 합하여 '육대강령'이라고 하시고, 우리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라 말씀하셨다.

과거의 수도인들은 정신의 의·식·주는 소중히 여기면서 육신의 의·식·주를 소홀히 하는 풍토가 있었다.
또 오늘날 보통의 사람들은 육신에 관한 3가지 강령은 소중한 줄 알면서 정신에 관한 3가지 강령은 중한 줄을 모른다. 이는 둘 다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신의 3강령과 육신의 3강령은 모두 중요하며 다만 그 본(本)과 말(末)을 말하자면 정신의 3강령이 근본이 되어서, 정신의 3가지 강령을 잘 공부하면 육신의 3가지 강령이 자연히 따라오는 이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지송학중학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