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처님의 깨달음과 깨닫는 법이 다 이 반야바라밀법에 의지하여 출생함으로 법에 의지하여 낳고 낳는 것이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약인(若人)이 만삼천대천세계칠보(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이용보시(以用布施)하면 시인(是人)의 소득복덕(所得福德)이 영위다부(寧爲多不)아. 수보리(須菩提)-언(言)하사대 심다(甚多)니이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시복덕(是福德)은 즉비복덕성(卽非福德性)일새 시고(是故)로 여래설복덕다(如來說福德多)니이다."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찰 만큼의 일곱 가지 보배로써 보시를 하였다면, 그 사람의 얻은 바 복덕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바로 복덕의 본질이 아닌 까닭에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여래께서 수보리에게 물어보실 때 어떤 마음으로 물어보셨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찰만큼 일곱가지 보배로 보시를 하면 물론 그 보시가 참으로 엄청나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유루로 지은 보시, 즉 현상 있는 이 세계에서 지은 형상 있는 보시이므로 수보리께서도 대답하실 때에 "많겠나이다"라고 하셨다. 이미 그것은 많다고는 하셨지만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신 것이다.

이 장에는 가장 중요한 말인 복덕성(福德性)이 나온다.
복덕성이라는 것은 복덕과는 다르다. 복덕과 복덕성이 다른 것은 복덕은 앞에서도 말한 유루로 지은 형상 있는 복덕이고 복덕성은 복이 아닌, 복덕이 많으니 적으니를 떠난 무루의 복덕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물질칠보는 금, 은, 유리, 산호, 마노, 매괴, 진주 등을 말하며, 인성칠보는 어여삐 여기고(慈), 불쌍히 여기고(悲), 기쁘게 하고(喜), 베풀어주고(捨), 어질고(仁), 옳으며(義), 지혜롭고(智), 착한(善) 마음을 말한다.

만덕산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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