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나전, 오묘한 빛의 향연

▲ 원불교역사박물관에 있는 대종사십상 자개농, 여수교당 이선원 교도가 2005년 기증.
나전 칠공예란 나전공예와 칠공예의 합성어다. 나전공예를 설명하면 나전(螺鈿)이란 한자로 소라(螺)와 보배로 꾸민 그릇(또는 비녀를 뜻하는) 전(鈿)의 합성어가 나전이며 순수한 우리말은 예부터 자개라 말한다. 자개는 주로 전복껍질을 가공한 것으로 자개를 사용하여 물건을 만드는 기술상의 재주와 솜씨를 나전공예(자개공예)라고 하며, 칠공예는 옻나무의 수액을 생칠(生漆) 또는 옻칠의 자연도료을 사용하여 재주와 솜씨를 발휘한 것을 이른다.

나전 칠공예의 역사
칠공예 유래를 살펴보면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다른 동물을 지배하기 위한 생활도구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 석기나 목기에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칠공예도 병행하여 발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칠공예 재료인 옻나무가 동양에서만 서식하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 칠공예가 발달했다.(요·순·우시대 채도(彩陶)문화와 병행하여 칠 문화발달)

우리나라 칠 공예의 연원을 보면 학자들 마다 의견이 다르다. 칠공예는 중국 전한(前漢)의 7대왕 무제가 한반도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여 지배한 시대의 낙랑고분에서 칠기유물이 나왔다고 하지만 이시기에 제작된 칠기는 한나라의 영향아래 만들어진 것이므로, 우리 칠공예 문화라 할 수 없다.

우리 손으로 처음 만들어진 칠기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에서 칠기조각이 발견된 까닭으로 신라부터라고 추정했으나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 발굴단이 경남 의령군 동면 다호리 고분에서 국내 최고인 기원전 1세기 때의 칠기유물이 발견됨으로써 낙랑칠기를 훨씬 앞선 청동기 시대에 비롯되었다는 설이 타당하다.
▲ 통영 송방웅(70) 나전장의 작업 모습.

신라 때의 경주 금관총과 천마총에서 나온 칠기가 많으며, 통일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안압지에서 발굴된 왕궁생활 기물로 칠기가 출토되어 그 역사를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 신라 중앙관부에 칠전(漆典)이 따로 있다는 기록을 볼 때 중앙에서 관리 육성한 것으로 보인다.
칠공예가 중국 한나라에서부터 발달한 것처럼 나전 공예도 중국 당나라 때 매우 성행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 나전공예는 고려시대에 사실상 꽃을 피우게 된다. 문헌상에 고려 문종 때 이미 중국 요나라에 나전 칠공예품을 예물로 보낸 사실과 고려 인종 때(1123년) 중국 사신으로 온 서긍이 송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 '그릇에 옻칠을 하는 일은 잘하지 못하지만, 나전일은 세밀하여 귀하다고 극찬하였고 기병이 타는 말 안장에도 나전이 장식되어 매우 정교하다'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고려사 식화지(食貨志) 중상서조(고려 역대 정사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각 왕조의 제정 경제 기사책과 왕실이 사용하는 기완(器玩)을 맡은 관부)에 소목, 나전 칠장과 화업 등에 장인들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 왕가 즉 국가에서 공방을 운영하여 나전 칠 공예품을 생산한 증거다.

고려 나전 칠공예는 섬세함과 화려함이 극치에 달했고, 부분적으로 자개 대신 대모나 동선을 사용하여 고려 나전공예의 격조 높은 수준을 나타내 그 명성을 얻었다.
우리나라 영문국호가 COREA(KOREA)의 뜻이 '나전'하는 나라, 고려에서 비롯된 것과 연관이 있다.

통영 나전 칠공예 역사
통영의 지명은 선조37년 (1604) 제 6대 통제사 이경준 장군이 본영을 한산도에서 두룡포에 옮겨온 후부터 통영이라 했으며 관아에 업무를 관장하는 6방을 설치했을 때, 공방(工房)에는 공고를 두어 진상품과 군기를 조성하여 원자재 및 제품의 수급과 관급장인들을 시켜 완제품을 직접 생산하도록 했다. 그 후 18세기 초에는 선자방 외 12공을 두었고, 후기에는 통개방, 화자방, 안자방을 폐방하고 패부방(貝付方), 주피방(周皮方), 미선방(尾扇方)을 신설, 역시 12공방 체제를 유지했다. 1895년(고종32) 폐영 될 때까지 약300년 간 찬란한 통제영 12공방의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나전 칠공예 제작과정
통영 나전 칠공예 역사는 통제영 12공방 역사와 함께 400년간 관주도로 전승발전 되어온 그 역사성 때문에 통영자개가 유명하다. 나전 칠공예가 중국은 조각 칠공예 중심으로 변화, 일본 또한 나전공예보다 칠공예(칠화)로 발전했으나 우리나라는 변함없이 나전공예로 발전, 주체성을 잃지 않고 높은 수준의 공예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나전 칠공예 재료는 자개와 나무, 옻칠과 남해안 일대에서 나는 전복껍질을 가공한, 색패, 청패가 전통재료다. 1960년 말부터 동남아 일대에서 서식하는 진주패, 야광패, 뉴질랜드패, 호주패 등과 멕시코 연안의 멕시코패 등등 다양한 종류의 수입자개도 사용하게 되었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칠이 전통재료이나 1945년 이후 옻칠 구입이 어려울 때 '캐슈'칠이 개발되어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전통칠은 역시 옻칠이다.

나전칠 외에 나무는 소지(백골)를 만들 때 사용하는데 주로 홍송, 강송, 미송 등을 주로 쓰며 합판이 개발된 후에는 합판을 이용하기도 한다. 나전 칠공예가 끝나면 공예품의 기능을 위해 금속장식을 부착해 그 멋을 더 했다.

나전 칠공예의 기법
나전공예의 기법은 크게 끊음질과 주름질 두 가지다. 그 중 전통 기법인 끊음질은 도구가 개발되기 전에 자개를 가위, 칼, 송곳 등으로 오리고 따내어 줄로 다듬어 무늬를 만들고 상사거도를 사용하여 상사를 짤라 상사칼로 '톡톡' 끊으면서 문양을 시문하는 방법이다.

반면 주름질은 1910년에 'ㄷ'자 톱태와 실톱날이 개발된 후부터 자개위에 그림을 그려 오려내는 기법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현대적인 기법을 말한다.

그리고 칠공예 기법에는 옻칠을 하는 횟수에 따라 요철(凹凸)과 평면처리 3가지 있으며 철형기법은 자개시문이 끝난 위에 2∼3회 칠하여 완성하는 방법이다.

요형은 자개시문이 끝난 후에 10회이상 칠을 한 다음 연마하고 상칠하여 칠 속에 묻혀있는 자개를 긁어내어 완성하는 기법으로 가장 어려운 기법이다. 평면기법은 요형처럼 칠을 한 후 연마해서 완성하는 기법이라 할 수 있다.

나전 칠공예품이 완성되기까지 25∼30여 과정을 걸쳐야 하며, 많은 시간이 필요한 어려운 공예품이다. 그 과정은 ①백골 다듬기 ②생칠 바르기 ③나무 틈 메우기 ④베 바르기 ⑤칠죽 바르기 ⑥연마하기 ⑦2회 칠죽 바르기 ⑧2회 연마하기 ⑨초칠(기름칠)하기 ⑩연마하기 ⑪2회 기름 칠하기 ⑫2회 연마하기로 여기까지가 밑바탕 처리과정에 속한다. ①자개 붙이기(나전작업) ②완성 후 풀 빼기 ③자개 손보기 ④ 생칠 바르기 ⑤연마 후 초칠 바르기 ⑥연마하기 ⑦중칠하기 ⑧연마하기 ⑨상칠하기 ⑩자개 긁기 ⑪숯갈기 ⑫초벌 광내기 ⑬흠 메우기 손보기 ⑭마감 광내기 ⑮불량일때는 반복작업을 계속 16금속장식 부착, 17마무리 손질로 수공예의 까다로움을 통해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 송방웅 나전장
중요무형문화재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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