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4: 원불교의 목적이 복락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무속신앙과는 어떻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대답: 물론 복을 빈다는 면에서는 무속신앙과 원불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는 무속신앙에서는 무조건 복을 비는데 반해서 원불교에서는 복락의 원인을 깨쳐서 복을 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즉 혜와 복을 같이 빈다면 원불교식이고 혜가 없는 복락의 추구는 무속식이라는 것입니다. 무속신앙에서는 씨도 안 뿌리고 추수하려는 것과 같이 복락의 근원을 모르면서 얻으려고 하지만 원불교에서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복을 빌되 인과보응의 지혜를 가지고 복을 비는 것입니다. 인과보응의 지혜란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복의 씨앗 또는 복의 밭을 가꾸어서 복락을 비는 것입니다.

실상사에서 며느리와의 관계를 부처님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노인 부부에게 대종사님이 가르치신 바와 같이 교당에서 가장 강조하는 가르침은 부처님에게 복을 비는 것보다는 며느리에게 직접 복을 미는 당처불공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원불교의 가장 진실하면서도 간단한 진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가르침이고 현생에서 복을 받는다면 전생에 복을 지은 결과이고 미래생에 복을 받길 원한다며 현생에서 열심히 복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복락은 하늘이 거져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돕는 자에게 내린다는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또한 원불교에서는 신통력을 가장 금기시합니다.

대종사께서는 2대 종법사인 정산종사가 제자이던 시절에 기도에 주력하여 영통이 있어 자꾸 이적이 나타나니 그것을 없애고 큰 공부 하게 하려고 토굴에 가둔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적을 금기시 하지 않지만 불교에서는 이적을 금기시 합니다. 신통의 기적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고 부처님을 죽이려고 하던 수나갓타에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통력 중 가장 하질은 남의 운명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중질의 신통력은 하늘을 날고 축지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훌륭한 신통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아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절에 갔을 때, 삼신당이나 삼성각이 있는 것을 보고 불교를 무속신앙과 동일 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교가 한국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토속의 무속신앙과 결합한 결과이고 원래의 진리 불교에는 무속적 요소가 전무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 사찰에서도 삼성각이나 삼신당은 절의 한쪽 모퉁이에 불교의 법당과 구분하여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삼성각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토착화 하면서 민간 신앙인 산신 신앙과 도교의 칠성 신앙 등을 불교가 수용하면서 생겨난 단면이라 할 수 있는데, 보통 큰 법당 뒤쪽에 자리하며, 각 신앙의 존상과 탱화를 모십니다.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당우를 삼성각(三聖閣)이라 하고, 각각 따로 모셨을 때는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이라 불리는 것이며, 엄격하게 말하면 불교와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한양대·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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