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 생활이요 생활이 불법이니 「불법으로써 생활을 빛내고 생활 속에서 불법을 닦자.」 이는 동정일여 영육쌍전과 더불어 본교의 혁신대도의 표어입니다.
과거에는 불교뿐만 아니라 대개의 종교가 세속을 떠난 생활을 본위로 하여 교리와 제도가 조직이 되었기에 세간생활하는 일반대중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잘 맞지 아니하였으며 더욱 오늘날과 같이 복잡다단한 생활 속에서 불법을 믿고 닦으며 생활하기에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세간을 떠난 수도인들은 부모 처자를 이별하고 사, 농, 공, 상의 직업도 없이 불공이나 동령으로써 산중생활을 하며 다만 염불, 간경, 좌선 등으로 일없이 일생을 보냈으니 어찌 대중이 다 같이 할 수 있는 생활이며 자신을 건지고 세상을 건지는 산 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진리와 사실에 입각한 큰 안목으로 살펴볼 때 불법이니 생활이니 함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어리석은 중생을 가르치기 위한 말이요 원래 하나인 것이며 또한 불법은 참된 생활을 위해 있는 것이요 생활은 바로 불법을 활용하고 빛내는 길이 됨을 깨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불법은 재래와 같은 제도의 불법이 아니라 사, 농, 공, 상을 여의지 아니하고 또는 재가출가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불법이 될 것이며 부처를 숭배하는 것도 한갓 국한된 불상에만 귀의하지 않고 우주만물 허공법계를 다 부처로 알게 됨으로 일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아니하고 세상일을 잘하면 그것이 곧 불법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요 불법공부를 잘하면 세상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서품 15장)하고 밝혀주셨습니다. 불법으로 생활하는 방법은 우리의 마음을 항상 진리에 뿌리박고 천만가지 일을 지어나갈 때 온전한 마음으로 생각한 후 취사하는 주의심 곧 일심의 대중을 놓지 않아서 참되고 바르고 빛나는 생활을 개척해 가는 것이요, 생활 속에서 불법을 닦는 방법은 생활 자체가 바로 진리의 움직임으로 무한한 은혜와 복록의 바탕이 되어있음을 깨쳐서 감사하고 불공하는 데 정성을 다하며 일심을 길들여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믿고 공부를 하는 것은 나도 부처님과 같은 생불이 되자는 것이요 생불이 되어 대접만 받고 있자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고해에 뛰어들어 활불이 되자는 것이니 이러한 산 법이라야 천하대중이 다 받들고 실행하는 산 종교가 될 것입니다. <교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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