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고의 근원은 과한 물욕 때문

마음을 정화하는 공부 반드시 필요
무시선으로 明心 淨心공부
〓 수행품 제4장 〓
<본문: 교전 161페이지>
불교에서 器世間의 인간의 시초를 설명하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중량이 없고 광명이 있었으며 날아다니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쩌다가 지상에 내려앉자 흙을 먹었더니 그만 중량이 생겨 날지못하게 되고 지상에서 살게 되었으며 광명도 없어져 버렸으며 먹는 것을 배설하는 배설기가 생겨나서 남녀생활이 시작되어 인간은 점차로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사람은 본래 靈의 존재였는데 어찌하다가 육체에 들어가게 되어 자유를 잃고 더럽혀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물욕에 헤매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신성한 것을 동경하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지금은 타향에 와서 있지만 옛날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말은 우리 인간은 본래 다 선하고 아름답고 신성한 존재이였나니 물욕 때문에 그 본성을 잃고 동물적인 생활을 하지만 모든 인간이 본래 선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그리워하고 선하려고 노력하면 선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문예부흥시대에 화가이며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시냇가에 이끼낀 돌을 조각하면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을 갈파하고 그 돌을 주워다가 조각하여 평화의 여신상을 만들어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본래가 좋은 본질이기 때문에 본래의 성품이 복구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자도 연단법을 써서 단전을 단련하면 날아다닌다고 하였는데 이 육체 생활에 있어서 집착을 버리면 자유자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기해단전에 힘을 얻으면 머리가 쇄락 해지고 마음이 맑아져서 일체물욕이 끊어지며 청정일념이 되어서 대공을 자유로 날아다니는 심경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한 물욕 때문에 사사건건에 집착하여 마음의 자유를 잃고 고의 생활을 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소한 술과 담배하나를 떼려하여도 그 맛에 집착하여 몇 번 결심을 하여도 잘 떼어지지 않는데 우리의 오욕생활에 있어서 집착을 떼기란 참으로 힘드는 일입니다.
물욕에 젖어서 습성이 된 우리는 그 생활이 좋아서 자유활발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집착된 생활을 여의고 고를 벗어나서 자유무애의 유쾌한 생활을 하려면 그 방법을 전문으로 배워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세상에서 입신성공해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학교에서 모든 학식의 준비를 1년에 어느 만큼이라도 전문적으로 그 방법을 배우고 단련하는 기회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어느 때 어느 곳이 선방 아님이 없지마는 그러한 무시선 생활을 하는 방법을 배워 익히는 시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시기는 마음의 정화작용을 하는 때인데 마음이 깨끗해지고 길이 들어가는데 재미를 느끼면 마음의 소제가 빨리 잘 될 것이요 解裁를 해서 실생활에 나가더라도 그 맛을 알아서 시간 시간마다 경계 경계마다 마음공부가 잘되어 극락생활이 전개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구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모든 물욕생활에 마음을 빼앗겨 마음의 정화작용은 잘되지 못할 것이며 더욱이 물욕생활에 나가면 정신없이 허둥지둥 살다가 복은 짓지 못하고 고의 세계로 전점 들어가게 되고 말 것입니다.
3일 수도는 천년보요 백년 탐욕은 一朝塵이니 우리는 여가 있는 대로 교당에 나와서 마음을 닦고 마음을 맑히며 마음을 밝히고 길들이며 인생생활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연마하여 정신의 양식을 장만하도록 노력하여야 되겠습니다.
정신을 온전하게 하고 못하는데 마음 한 번 잘 쓰고 못쓰는데 복이 열리고 죄가 열리는 것이니 이 수도의 자세야말로 우리 인생에게는 절대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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