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형(동산선원, 교무)
서구의 어느 나라에서는 시골의 신선한 공기가 도시로 판매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느 日刊紙에서 보았다. 질식직전(窒息直前)의 환자에게 산소호흡을 시키고 우주인과 海底人들이 산소통을 짊어지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이미 상식이겠지만 이 땅위에 발을 붙이고 사는 正常人이 공기를 사다 마셔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엇인가 非正常으로 변전하는 것만 같다. 이것은 필시 자연의 섭리를 능가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한 지성이 전연 예기치 못한 自業自得의 현상이 아닐까.
언제부턴가 나는 가끔 자신의 현존재와 佛子로서 수행길을 생각하노라면 공기와 물에 대하여 생각이 미치곤 했다. 공기가 없이는 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가 하면 우리 몸의 구성요소가 70퍼센트는 물이라 한다. 그러나 정작 물의 은혜와 진가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우주 안에 공기가 그리고 물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샘물이 있을 것인가 하고 自問해 보지마는 나의 천견으로는 아직껏 가능하다고 自答할수 없는채 오직 공기와 물에 대하여 고마움과 감사를 느낄 뿐이다. 아니 감사만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허전하고 부족한 실정이기에 그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충동에 스스로 사로잡힌다.
공기와 물, 이 가운데 갊아 있는 현묘 不測한 妙理 無窮無盡한 功德…
형상하기 어려운 내 마음도 저 공기처럼 텅 비어 있으면서 싱싱하게 가득 차 있다면 파란고해에 얽매인 무겁고 탁한 중생의 마음을 가벼웁고 맑은 마음으로 돌릴수 있으련만 또한 저 강과 바다의 물처럼 부드럽고 강하며 넉넉하고 한가하다면 역시 참 마음의 제구실을 다 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無窮無盡하고 神妙難測한 조화를 갊아 있으면서도 흔적마저 찾아 볼 수 없는 공기! 만물의 殺活에 간섭하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도 항상 아래로만 감싸며 내려가는 相없는 물. 만물이 그것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듯이 내 마음도 공기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만물을 포용하고 항상 아래로만 흐르는 相없는 마음이 되라고 스스로에게 외친다.
공기의 현묘한 내용, 물의 무궁한 공덕을 무엇으로 다 이를수 있으랴만 오히려 彫文傷德이 될까 저어한다. 이에 前萬古 後萬古의 모든 有志之士와 함께 공기와 물의 참다운 맛을 같이 삼킬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天地萬物이 부처 아님이 없지마는 공기는 나에게 如來가 되는 길을, 물은 나에게 보살이 되는 길을 언제나 간절히 깨우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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