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의 참화를 겪은지도 벌써 20여년의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엔 그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남모르게 고통과 서러움을 벗어나지 못한 동포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고통과 서러움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항상 즐거운 마음과 감사생활로 보람찬 내일의 설계에 바쁜 법동지가 있으니 익산지부 주무 최제윤씨.
▷‘원기28년 10월 14일 개성에서 당시 그곳 교무이신 이경순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입교했지요.’
본사 편집실에 초대되어 입교동기를 묻는 기자에게 20여년전의 옛날을 회상하시는 듯 한참동안 상념 끝에 말씀이 시작된다. 개성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으시다 단신 남하하여 총부를 중심으로 참기름행상 20여년째.
▷‘여러 동지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입교하신 후 30여년간을 한번도 예회에 빠지신 일이 없으시다는데- ‘30여년이 아니라 26년간이죠. 금년에 예순다섯이고 서른 아홉에 입교했으니 입교한지 꼭 26년째인데 내가 입교 할 무렵 개성지부가 출석수 불리기로 전국에서 3등을 했기 때문에 그때 결심을 했습니다. 전국적으로 1등을 하려면 우선 나 하나로부터 예회에 결석하지 않기로 마음속에 다짐하고 예횟날 대중 앞에서 선서를 했습니다.’
말씀도중 목이 메이신다. 그리고 눈물이 주루룩 쏟아지는 것을 한사코 손수건으로 감추시고, 아마 이북에 있을 옛날의 법동지들을 연상하시거나 가족들을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불가피한 때는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 불가피한 경우를 다섯가지로 잡았습니다. 즉 ①부모나 식구가 돌아가셨을 때  ②가족의 혼인날을 당했을 때 ③식구 중에 급병환자가 발생했을 때 ④자신이 중한병고에 시달릴 때 ⑤출타 중에 교통관계 등으로 어쩔 수 없을 때를 예외조항으로 잡았습니다.’
말씀이 계속됨에 따라 더욱 빨라지고 억양이 높아진다.
‘한때는 이질병에 걸려 걷지도 못할 정도로 신음하고 있었으나 이 서약을 지키기 위해서 인력거를 타고 예회에 참석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가 대전에 갔다가 그만 지부까지 오지 못하고 예회에 빠진 일이 있는데 그때에도 예회시간에 심고를 올렸습니다.’
신심과 공심만 장하신게 아니고 사업심도 장하셔서 종로지부가 설립될 때 건설자금으로 거액을 협력하셨고, 원광사 인쇄시설자금, 영산방언공사, 군산지부 재건, 장학회 등 힘이 미치는 대로 성의를 다하셨다.
▷‘신앙생활을 통한 앞으로의 어떤 계획이라도 있으신지요’ 질문이 끝나자 마자 ‘있지요. 제가 개성지부 주무 일을 맞아보고 있을 때 교당 유지적립금 약간을 남에게 이자 돈으로 빌려주었다가 6ㆍ25로 그만 전액을 못 받고 말았는데 그 돈을 교단에 갚아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름장사를 얼마동안 더 계속해서 논필지라도 마련해 볼 계획입니다만....’ 말끝을 흐리면서 아직 계획이니 열 대중에게 미리 발표할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 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또 하나 할 일은 이제 부지런히 수양하여 이 세상을 떠날 봇다리를 챙겨야겠습니다.’고 마치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마음이 조급해지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대종사님의 법을 지킨 결과로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자력생활과 감사생활을 하게됨을 신앙생활의 보람으로 생각한다는 최제윤 씨는 지금 그대로 봇다리가 챙겨진 것만 같다.
‘신용 지키기를 생명과 같이하기 때문에 비교적 장사가 잘된다.’면서 집집마다 순교 겸해서 매일같이 돌아 다니신단다. 그러나 이젠 연로(年老) 하시어 여간 힘에 겨우시어서 양노원에 들어오시어 쉬셔야 할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내내 건강과 복혜가 족족 하시기를 빌었다.<南>
<참기름행상을 얼마동안 더 계속하겠다는 최제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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