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원남지부에서는 법당을 신축 지난 7월 7일 봉불을 겸한 낙성식을 성대히 거행하고 각종 기념행사도 아울러 가졌다. 다음은 이 날 하오 5시 30분 동지부 법당에서 개최된 기념강연회의 강연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우리의 생활좌표  안병욱
誠은 만물의 시작과 끝,  우리의 설자리는 「참」
종교란 무엇이냐고 할 때 사람마다 여러 가지 해석을 하지만 나는 참의 자리에 들어가려는 정성된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고이래로 참을 말하지 않은 종교가 없고 참을 외치지 않은 도덕이 없다.
중용에 「참은 하늘의 길이요 참을 행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라 하였다.
도덕의 근본원리는 성실이다. 中庸은 이 성실을 인생의 도덕원리로부터 우주가 참으로 되어 있다는 우주의 형이상학적 원리로까지 끌어올렸다. 사람은 사람을 속이나 자연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자연은 참이요 참은 하늘의 길이기 때문이다.
성실성을 실천하는 건 사람의 길이다. 성실성이 없는 인간관계는 참다운 인간관계라 할 수 없다. 그것은 남을 이용하려는 이용관계는 될 수 있다. 진실한 인간적인 교제는 너와 나 사이에 성실성이 오갈 때 이루어진다. 진정한 사랑, 참다운 교육은 너의 성실과 나의 성실이 합해야 비로소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진다.
만일 종교에서 성실성을 빼낸다면 그것은 마치 태양속에서 빛을, 소금에서 짠맛을 빼는 것과 같아서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중용에서는 不誠無物이라 하고 誠은 物之終始라고 했다. 성은 만물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사회는 부정 불신으로 전락되고 있다. 가짜가 진짜, 진짜가 가짜 대접 받는 불행한 사회, 가치 질서가 바뀌어진 것이 오늘의 한국사회이다. 진실이 패하고 거짓이 승리하는 사회는 패망의 사회, 짐승의 사회다.
참의 빛을 드러내자. 진실을 높이 쳐들자. 진실의 사람이 많이 나와 眞이 이기고 僞가 패하는 영광의 사회를 만들자.
우리가 디디고 서야 할 인생의 땅은 어딘가. 참, 진실, 성실의 땅이다. 참, 진실, 성실의 땅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서 종교 존재의 근본 이유가 있다. 사회를 썩은 연못에 비유하자. 이를 맑히려면 맑은 샘 줄기가 있어야 한다. 종교가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의 샘이 되는 일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2대 관계의 연속이다. 하나는 대인관계의 연속으로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근본이요 또 하나는 대물관계의 연속으로 사물을 처리해 가는 일이니 충성이 기본원리이다. 이 신의와 충성을 합한 것이 참이다. 공자는 부국의 원리로 도덕 경제 국방을 말하고 도덕을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삼았다. 경제적 부흥을 하려면 도덕적 자본이 있어야 한다. 강한 국방력은 강한 도덕력이 밑받침이 된다. 고로 無信이면 不立이다.
요컨대 종교는 인간의 갈 길에 대하여 대답을 해 주어야 한다. 원불교에서는 왜 무시선 무처선ㆍ처처불상 사사불공을 강조하는가. 그것은 참에 도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나 지혜와 능력 충실을 다하는 것이 성실이다. 종교생활은 마음속에 무얼 하나 念하는 생활이다. 언제 어디서나 정성껏 골똘히 念하고 사는게 종교인데 참에 살려는 念이여야 한다. 여기에 현대종교ㆍ생활종교ㆍ대중종교ㆍ행동종교로서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설자리는 어디냐 무엇을 바라다보고 인생을 살 것이냐. 이것은 참의 자리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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