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진리 터득, 진리로써 생활을 하자.
요즈음 생활화라는 말이 많이 쓰여지고 있다. 생활이란 먹고 입고 자고 일하는 등의 인간의 일반적인 활동을 말한다. 따라서 무엇을 생활화한다 또는 종교를 생활화한다 할 때에는 그 무엇이 또는 종교가 인간의 일반적인 활동과 한 묶음이 되어서 생활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놓여지는 것을 뜻한다. 즉 생활자체가 종교적이어야 하고 종교적인 행위는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부분의 종교는 생활과 분리된 상태에 있었다. 그것은 종교가 지나치게 출세간적 이었다거나 또는 자기 종교의 교리 계율 의식 신조를 충실히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으로서의 의무라던가 사회적인 책임, 심하게는 가정의 윤리마저도 저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까닭이었다.
오늘날 뜻 있는 종교인들은 현대사회는 종교부재의 사회라고 개탄, 권위의식의 조장, 위선과 독선, 귀족화, 파벌분열, 기복적이고 관광지화 하는 것이 오늘의 종교계 실정이라고 자기 종교를 고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주만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만물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사회학 법학 자연 과학 윤리학 의학 등 모든 학문도 결국은 인간을 참되게 하고(眞) 착하게 하고(善) 아름답게 하고(美) 올바르게 하여(正義) 인생을 행복되게 하는데 궁극목적이 있다. 인간이 학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교에 진리가 있는 것은 인간이 그 진리를 잘 활용하라는 것이지 진리에 끌려 다니라는 것은 아니다. 만일 인간 위에 종교가 있게 된다면 이는 종교의 중대한 착오일 것이다. 종교는 다만 인간의 생활을 참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는 인간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종교는 독단에 빠져 종교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는 인간을 위한 종교가 종교를 위한 인간이 되도록 했고 이러한 점은 종교를 고립되게 했던 것이다. 또한 기복적인 종교사상은 자력정신과 근면을 약화시켜 때로는 빈곤과 무지와 질병을 초래케 하였다.
바야흐로 시대는 새로워지고 있다. 이러한 즈음 새 교리와 새 제도를 가지고 원불교는 출현하였다.
원불교는 일상생활을 중요시한다. 그러므로 진리에 의하여 생활이 이루어지도록 하고(불법시생활) 생활 속에서 진리를 터득하는 것을 요구한다(생활시불법). 그리하여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를 지향(영육쌍전)함으로써, 종교인이 되고 보면 바로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우주만유는 진리의 화현이다. 그러므로 곳곳이 부처님이요(처처불상) 우리의 일일은 불공의 신념이어야 한다(사사불공). 우리는 항상 천지 부모 동포 법률로부터 피은 됨을 깨달아서 보은 감사하는 생활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안으로 온전한 마음으로(정신수양) 바르고 빠른 판단을 얻어(사리연구) 바른 행동(작업취사)을 할 수 있는 힘을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쌓아나갈 때 우리는 성불을 하는 것이요 성인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생활을 떠나지 않는 종교 수행 법을 온 누리에 펼쳐 「한 울안 한 이치에 한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평화·행복·정의의 세계)를 이룩하자」는 것이 새종교인 생활종교로서의 원불교의 목표이다.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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