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학림 설립이 종립학교 시초
구호사업은 주로 서울ㆍ이리에서 활약 커

첫째 한글보급 활동으로는 1946년 1월 지방 교무(포교사)를 중앙총부에 소집하고 한글학자 김운애 선생을 강사로 초청하여 10일간 단기강습을 받게 한 후 전국 각 교당에 다시 돌아가 문맹퇴치운동에 노력케 하였다.
둘째 학교설립은 1946년(원기 31년) 유일학림의 설립으로 시작되어 그 후 원광대학 원광중고교 원광여중종합고교 등 현 종립학교가 계속 설립되었다.
셋째 전재동포구호사업은 당시에 가장 두드러지게 활동한 사업이다. 서울과 이리에서는 교역자가 직접 구호활동에 나섰고 전주 부산 등지에서는 교당을 중심으로 교도가 활동하였다.
서울 원호사업은 주산종사께서 총 책임자가 되시고 팔타원 황정신행 선생은 주로 외무를 맡아 보시었으며 유허일, 박재봉, 박해운, 이중정, 박창기, 김윤중, 이성신, 이순석, 정경호, 손위일 등 다수의 교역자가 서울역전 구 세브란스병원 건너편 3층 건물에 구호본부를 정하고 일본과 만주 등 해외와 국내 각처에서 밀려오는 전재동포를 원호하였다.
원호본부 건물 옥상에 당시 본교 이름인 「불법연구회」라 쓴 현수막을 내어걸고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밥을 직접 지어서 식사를 제공하였고 환자들은 별도로 지금 서울지부(당시 용강사)에 수용하여 치료하였다.
한편 팔타원님의 주선으로 지금 서울 덕성여학교 자리에 학병 귀국자들을 별도로 수용하였으며 주산종사께서는 서울 부민관(지금 시민회관격)에서 학병 귀국자들에게 건국을 위한 강연을 하시었고 지금 한남동 서울 수도원에 전재고아들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 본교 고아원 운영의 시초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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