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아무런 표준도 없이 허영과 쾌락으로만 인생을 즐긴 지난 날의 철부지한 나를 조용히 회고하여 본다. 영성에 대한 이해와 인격의 빛은 무엇인지도 모른체 옅은 감정의 질서에만 헤매이다가 그 얼마나 생의 공허함과 권태와 실망을 느끼었던가. 겉으로는 자유스럽게 생을 향락하는 즐거운 인생 태도같이 보였으나 그 마음의 본질에는 불안과 우수로 돌아가기에 한 때는 절망에 짜져 삶의 의욕조차 일어버렸던 일, 인생의 전부를 실망해버린 나는 산다는 자체가 두려웁기만 하였다. 허나 인생은 부정만으로만 끝나지는 않는가. 어느 해 정월 우연히 산길을 걷다가 귓가에 조용히 마주치는 소리가 있었다. 그곳을 향해 걸어간 곳이 원불교 화해지부였으니 그 성가 소식이 내가 불자가 된 첫 기연이 되었다.


법당에 들어가 강사 선생님의 설교를 듣고 나는 무엇인가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으며 노예생활에 처한 자신을 그 때야 깨달았다. 남의 집 쓰레기에서 주운 많은 누더기들이 심한 냄새가 풍기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 누더기의 베일을 하나하나 벗어버리고 좀 더 참되고 착실한 나를 회복하여야겠다는 엄숙한 자각 앞에 맞서게 되었다. 또 하나의 존재가 탄생되는 재생의 깨침이다. 그 정신적인 자각이 오늘의 나를 전무출신까지 끌어올렸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목적하에 새로운 마음으로 생활하는 나는 매양 법열에 다소히 살찌며 때로는 참회와 속죄의 눈물속에 기쁘게 살아왔다. 감사와 성스러움이 그리고 희망과 정열이 넘쳤기 때문이다. 진리로부터 부여된 사명이 무엇이며 이 작은 갈대의 존재가 이 땅에 와서 하고 가야 할 일이 무엇인 줄 우리 선진님들은 눈앞에 역력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무출신! 이름만 불러봐도 이 얼마나 거룩하고 숭고하며 그리고 엄연하게 빛나는 자비의 손길인가. 인생의 정로를 몰라 방황했던 과거를 생각하노라면 지금도 벅찬 감격의 눈물이 두 뺨을 어린다. 성불제중이란 서원을 세우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에 인생을 확신한 나는 두 손을 포개줠 때마다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바쳐야 된다고 굳게 다짐해본다. 비록 생활하여 나가는 동안 때로는 사소한 불만들에 번민한 적도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그 때마다 자신의 부족으로 돌리고 수도의 낙을 몸과 마음에 베이도록 힘을 다해왔다. 이러한 나에게도 2년이 체 못가서 한 모퉁이에선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 소식 없이 찾아온 길손은 병환이었다. 나는 다시 이차적으로 허무와 죽음 앞에 마주쳤던 것이다.


죽음이 최우라는 일반적인 견해에서 탈을 벗어나지 못한 나는 이 한 생각만이 뇌리전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죽어가는 그 앞에 과연 무엇이 존재한단 말이냐. 힘써 노력을 다하여도 결국엔 이 작은 육체마저 한 줌의 땅으로 썩어 없어진다고 생각할 때 나는 인생에 대해서 더 이상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가 없이 생각되었다. 생사일여의 법문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선진들의 죽음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허무를 어찌하랴.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면 저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구나. 세상 일이 철없는 아이의 장난으로만 보였다. 산다는 것 그 자체가 괴로웠다. 새벽 종소리에 깨어나 첫 의식 세계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뇌리엔 불안과 공인의 그림자뿐이다. 날마다 즐겁게 자기의 운명을 좇을 수 있는 사람과 매일 취침시에 내일 아침 또 눈을 뜨게 됨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필티히」는 말했지만 나는 매일 아침 행복의 미소를 지으면서 일어날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 이 공포의 노이로제에 걸렸던 절망의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길에 드디어 문제의 열쇠를 얻었다. 그것은 잠의 세계를 미루어 본 나는 오직 죽음을 최후라고 느끼지만 않는다면 나는 죽음 앞에 태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사대사를 해결하는 중대한 임무란 먼 데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요, 바로 이 한 마음을 돌리는데 있고 또 그것을 실행하는데 생의 보람과 의미가 있다는 깨침이 들었다. 아울러 어느 날 스승님의 법문을 통해서 또한 기쁘게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그것은 현명한 사람이라면 하루하루가 새로운 생활이다는 말씀이다. 하루를 새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 나는 생사를 넘어서는 일과 기침 종소리를 함께 부합시켜 나에게 끌어들여 하나의 확실하고도 실감된 신앙과 수행의 새로운 길을 찾았다. 나는 그 교훈에 의해서 살고 있는 동안 많은 은혜를 입었기에 다음에 소개해볼까 한다.
<교무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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