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 =영육쌍전의 공부가 중요

생업을 경시하는 것은 사이비 수도인
동정일여로 삼대력 배양
〓 수행품 제3장 〓
<본문: 교전 160페이지>
우리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즉 사람이 사람노릇을 잘하고 인류사회가 더욱 발전되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공부법을 보면 靜하고 無事해야만 하고 일체를 不視해야만 하였기 때문에 공부한 보람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학교를 일평생 책만 가지고 다니기만 하면 그 사람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고 할 것이며 그물을 만드는 것은 그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것인데 일평생 그물을 만들어 놓고 활용하지 아니한다면 그 역시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반드시 해야하지만 전 인류가 다같이 마음공부를 그러한 식으로 한다면 개인이나 국가, 사회, 민족의 생활은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수양을 한다는 것도 우리 마음 가운데 부정한 마음을 뽑아서 선량한 마음을 기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양을 한갓 안정만 하고 의욕이 없는 것으로 오인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진정한 공부란 인생이 꼭 해야할 보람있는 일에 의욕이 있어야 참으로 산 공부입니다. 의욕이 없다는 것은 아편을 먹고 몽롱해 있다던가 술에 취하여 천하가 태평하다던가 하는 상태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의욕상실증을 수양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생업을 중요시하지 아니하고 무욕담백(無慾談백)하는 척하는 사람은 세상에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사람입니다. 욕심에 급급한 사람보다는 나은 듯 하지만 역시 풍채적 인물이라고 어떤 사람이 말했는데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 소용없는 사람입니다.
푸로지노스는 위대한 신비가이지만 대실업가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단지 자기사사의 것으로 하지 않고 공중에 바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사유를 만들지 아니하는 것이 도인이라 하여 일체의 실업을 버리고 道人然한 것은 능력 없는 사이비 도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일을 피하고 사업을 피하는 것은 진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小隱은 隱於能藪하고 大隱은 隱於朝市라고 노자는 말했는데 우리는 일을 피하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마음을 산수에 소요시키도록 해야합니다. 물욕 세상에 살면서 물욕을 초월하는 심경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수차(水車)가 반은 물 속에 반은 물밖에 있어야 그 능력을 발휘하고 수차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만일 물 속에 아주 잠겨버린다던가 아주 밖으로 전체가 나와 버린다든지 하면 수차의 의미는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차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과 공부를 별도로 보지 말고 정할 때 얻은 공부력을 가지고 동할 때 일을 잘해야 하며, 또 그 일을 할 때 수양, 연구, 취사의 삼대력을 얻도록 하여 공부력도 주야 24시를 통해서 진보되어 나가면 일도 잘되고 공부도 잘되어서 자기와 국가사회 전체가 자꾸 발전할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공부하는 의의가 있는 것이며 참으로 산 마음공부라 하겠습니다.
과거의 공부법은 일을 도외시했고 보통 세속생활에 급급한 사람은 정신없이 물욕에 끌려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물욕 세상에 빠져 사는 생활을 하지 말고 마음공부를 힘써 하는 동정일여의 공부법으로 단련해야 하며 마음공부 한다 하여 육신생활을 무시하는 사상을 버리고 영육쌍전의 여념 없는 생활을 하는데 힘써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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