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분명히 밝아져 가는 시대로서 사람들의 지혜가 날로 열리어 가는지라 모든 문화의 차원이 높아지면서 종교의 자세에도 무엇인가 새로운 면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더욱 새시대의 새로운 사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우리 원불교야말로 종교가 갖추어야 할 새로운 자세를 가장 뚜렷하게 간직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지난 7월초 호남지구 각 교당 사무 감사를 마치신 감찰원장 이공주 선생님께서 「각 지방 교당의 행사가 기복 불교가 경향이 과한 듯하다」고 지적하신 것을 본보를 통해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복을 장만할 만한 생활을 외면한 채 제단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복을 비는 기복 행사가 종교의 참된 면목을 흐리게 하여 왔으며, 이 기복적 요소가 더욱 심해지면서 무당들의 미신적 행사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함으로서 과학하는 현대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물론 이에 과한 만능을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과학의 영역이 아무리 급진적으로 넓어진다 하더라도 과학은 결국 우주의 근원적 진리에 말미암은 종교의 품안을 벗어날 수 없는데 대하여 종교는 과학의 영역을 초월할 수 있는 곳에 그 생명력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종국적으로는 과학의 영역을 초월한다 할지라도 종교적 진리가 과학적 진리와 상치될 수 없으며 과학적 진리를 포용하면서 진리적으로 과학을 초월하여야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새 시대의 새 종교인 우리 원불교 교단에서는 대중을 이끌어 가기 위한 일시적 방편으로일지라도 과학의 한계를 벗어나는 언행을 임의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때로 과학을 초월해야할 종교적 요청에 따라 언동해야 할 때에는 반드시 우주의 근원적 진리인 일원상의 진리를 향해 경건한 자세로 묻고 대조하여 어느 정도의 자신을 갖게 될 때 한해서 언동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김도융 <원청 전북연합회 회장>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