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시의 불심, 만덕산에 수도장 건설

믿음에 사는 사람…… 이 회상에 몸과 마음을 오롯이 바쳤기에 믿음을 떠나서는 삶의 보람마저 잃어버리는가?
 이 공부와 사업을 위해서는 남몰래 묵묵히 정진하고 말없이 일해 온 숨은 불자 樂山 박낙천(56·전주지부)씨를 찾아본다.
「그러니까 15년쯤 됩니다. 우연히 윤정운(현 수계농원 교감) 선생은 뵙게 되어 불법을 들었지요, 감명이 컸습니다. 저의 앞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만 같았습니다.」원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를 먼 옛날을 회상하며 담담한 표정으로 들려준다.
「그 후 원불교교전(당시 불교정전)을 구해서 읽었지요, 물론 입교도 안 했지만 생활의 지침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틈나는 대로 읽어 거의 외어버렸지요.」 무서운 정력이다. 그리하여 2년 뒤 전주지부를 처음 찾게 되고 조용석 지부장의 연원으로 입교하게 되었다고 한다.
입교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법회에 나가 설법을 듣는 것만으로는 어쩐지 아쉬워서 수양정진을 위한 기도를 결심, 8년 전부터는 만덕산(전북 진안)에서  매월 3차례씩 기도를 계속해왔다. 그 때 마침 미륵사에서 휴양중이시던 대산종법사님을 뵙게 되고 만덕산을 원불교의 수도지로 만들 결심이 굳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만덕산 기슭에 아담한 새 수도장을 마련했고 법당 건축을 위해서 진안에서는 목재를, 전주에서는 기와를, 건축자재들을 가지고 준령을 넘는 것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대종사님 법을 받들겠다는 신념이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법당 건축당시의 고충을 말해준다.
「제가 살아있는 한 그곳에 완전한 교당을 만들어 놓는 것이 소원입니다. 특히 대종사님과 인연이 있는 곳이고 또 제가 생각할 때도 저의 온 정력을 쏟아보고 싶은 곳입니다. 그래야지만 현재뿐만 아니라 영생을 두고두고 이 법에 의존해서 살 수 있을 것만 같이 생각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음력 3·6일로 만덕산 수도장을 찾게 되고 그 때마다 양경서 선생의 주재로 인근 주민들과 함께 법회를 갖는다고 한다.
「앞으로의 어떤 계획이라도 있으시면……」
「글쎄요. 지금 거교적으로 반백년 성업결실에 매진하고 있는데 저도 그 대열에 앞장서야 되겠지만 우선 만덕산에 완전한 교당이 되도록 하는 것이 제겐 더 급하다고 생각됩니다. 하던 일이 우선 끝나야 될텐데…」
가정에서는 약간의 농사를 짓고 선조로부터 전수한 비방으로 「박고약」을 제조, 전국 유명약국에 공급하여 그 이익금으로 공사를 하게된다고 한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딸만 다섯, 고명아들이 지난여름 불의의 변을 당했다. 만년에 외아들을 잃고도 신앙심에 의하여 안분 할 수 있었던 씨의 태도에 주위에서는 감명을 받기도.
「딸들을 전무출신 시키고 싶지만 인연이 적은 모양입니다. 진리를 이해하지 못해요, 깨우치고 배우고 해야할 텐데……」 무엇인가 아쉽다는 표정.
「조석심고를 빼는 날이 없습니다. 초연하고 해탈한 마음은 장하다고 할까요.」정진숙 교무님의 말씀이다.
사업뿐만 아니라 공부심도 그 누구보다 뛰어난 불자 박낙천씨, 씨의 얼굴엔 잠든 아기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평화스러운 모습이 항상 떠나지 않는다. 환한 미소 부드러운 음성이 가지의 마음을 한결 가뿐하게 해준다. <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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