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고 빼앗김과 주고받음은 천양지차
눈앞의 이해 떠나 본말과 선후를 생각해야

「사람이 누구나 자기를 좋게 하려는 한 생각이 없지 아니하나 구하는데 있어서는 혹은 순리로, 혹은 역리로 혹은 사실로, 혹은 허망하게 각각 그 지견과 역량을 따라 구하므로 드디어 성공과 실패의 차를 내게 되나니, 순리로 구하는 사람은 남을 좋게 하면서 자기가 좋아지는 도를 행하므로 한없는 낙원을 개척하게 되고 역리로 구하는 사람은 자기만 좋고자 하여 남을 해하므로 한없는 죄고에 빠지게 되나니라.」(인도품 10장)
 순리와 사실로 구하는 사람은 모든 복락을 이치에 따라 당처에 구하므로 그 성과를 얻게 되고 역리와 허망으로 구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법에 바탕하지 않고 모든 복락을 알 수 없는 미신 처에 구하므로 필경 아무 성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빼앗고 빼앗기는 것과 주고받는 것이 그 차이가 천양 같습니다. 빼앗고 빼앗기는 것과 한고 원수가 맺혀서 불안의 종자가 수멍 있고, 주고받는 것은 은혜와 인정이 화하여 평화가 건설됩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떻습니까ㆍ
 살인조직 지존파일당이 지은 집은 두목의 노모가 살던 초가를 허물고 세운 아지트였습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이 「노인이 아들을 잘 두어 호강하게 됐다」고 부러워했던 그 집은 살인공장이었습니다.
 빼앗고 빼앗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극한 범죄의 살인극이었습니다. 결국은 사람을 죽이기 이하여 지은 집이 자신들을 위한 죽음의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토정비결>을 지은 이지함 선생은 고려 때 학자로 목은 이색의 6대 손 이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온갖 명예와 부귀를 버리고 토굴 같은 집에서 학문에만 전념하며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토정 선생의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어 장손이 된 토정 선생은 할아버지의 장례를 손수 치르기 위하여 당시 풍습대로 그 묘 자리가 좋은지 나쁜지 지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지관은 산의 생김새와 묘 자리의 주변을 살피더니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앞도 탁 트이고 햇빛도 내리쬐니 참 좋긴 합니다. 그런데 이곳을 장지로 쓴다면 당신의 직계 자손들에게는 별로 좋지 못할 것이외다. 그러나 다른 친척들에게는 벼슬자리도 좋고 큰 복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다른 묘자리를 쓰는 게……』
 지관이 이렇게 말하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채비를 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아무 말 없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토정 선생이 호령했습니다.
 『장지는 이곳으로 정하겠다. 내 자손들 보다 더 많은 친척들이 잘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느냐』
 말을 마친 토정 선생은 뒷짐을 비고 먼 산을 쳐다보니 잠시 후 삽질하는 소리가 온 산에 퍼져갔습니다.
 모든 일에는 본말과 선후를 찾아 준비하라 하시고 눈앞의 이해에 얽매이지 말고 영원한 장래를 놓고 근본 되는 일에 힘 쓰라 하셨습니다. 일생을 살아도 결국 육신하나 돌보는데 그치고 근본 되는 마음을 돌볼 줄 모르는 삶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교무ㆍ서울서부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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