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우주의 주인이요 만물이 영장이다. 우리는 인간 없는 세계를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서 인간처럼 모순 덩어리요 불완전한 존재는 없다.
인간, 그것은 정신과 육체, 이상과 현실, 이성과 감성, 이론과 실재의 모순 대립 속에서 허덕인다. 인간은 때때로 자기모순에 빠지고, 자가당착에 떨어지고 견강부회의 고집을 부린다. 독단과 독선 아집과 편견, 애증과 미혹의 갈등에 몸부림친다. 인간은 희생적이면서도 지극히 이기적이요, 착하디 학하면서도 한없이 잔인하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모순 토성이요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인간은 모순과 불완전의 존재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완전한 인간, 위대하고 훌륭한 성자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성자란 가장 완전한 인간상이요, 모든 인류가 추앙하는 모습이다. 너무나 부족하고 너무나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에 언행이 일치하고 만인의 모범이 되는 성자를 높이 우러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역사상에 불멸의 이름을 남긴 성자라 해서 아무런 잘못도 부족도 없는 완전한 인간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역시 인간적인 것이다. 때로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때로는 이율배반적인 욕망에 몸부림 치고, 때로는 잘못과 허점투성이로 만신창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가 다 되어 버린 인간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생명을 상실한 것이다. 부처가 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인간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고 존겨알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아무런 잘못과 모순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에겐 성자도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함부로 성자를 비방하게도 된다. 너무나 지나치게 완전한 인간이기를 기대하지도 강요하지도 말아야 한다.
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진리 앞에 자기 자신을 엄숙히 비춰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고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 자신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현재에 만족할 수 없다. 더욱 더 경건한 마음으로 진리 앞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부족한 점을 보충해 가기로 맹서해야 하는 것이다.
훈훈한 사랑의 손길
12월은 모든 사람이 한 해를 반서애보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달이다. 또한 12월은 추운 계절이면서도 1년 중 가장 따스한 인정, 훈훈한 사랑의 입김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왠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12월에 불우한 이웃에 따스한 사랑의 손길을 뻗쳐보는 것이다. 1년 중 불우 이웃돕기의 미담이 가장 풍성하게 꽃 피는 계절도 12월인 것이다.
그래서 12월은 차거운 날씨와는 정반대로 사랑의 입김이 훈훈하고, 나뭇잎은 떨어져 대지를 뒹굴어도 인정 미담은 만발하여 우리들의 가슴을 흐뭇하게 해준다.
평소에 자기 한 사람의 이익추구에 급급하던 사람들도 조금이라도 착한 눈길을 돌려서 조금이라도 착한 일을 해보려는 12월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에서는 12월을 자선의 달로 정하였다.
각 교당에서는 서로 앞 다투어 자선의 달 행사를 갖기에 바쁘다. 종교가 종교다운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이 정신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해마다 자선의 달이 몇 가지 생각되어지는 점이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방일가 사생일신의 정신이 과연 투철한가?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울어나오는 보시라야만 참 공덕이 되고, 마음속에서 베풀었다는 상이 없어야만 한다고 했는데 과연 베풀고도 베푼 흔적이 없는가. 지장보살 같은 자비정신으로 불우한 형제들의 아픔을 내 자신의 아픔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가.
관념과 상으로 명예를 얻고 생색을 내기 위한 경우는 없었던가. 습관적으로 또는 연례행사처럼 잠시 하는 체 했다가 나머지 11개월은 또 불우이웃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하지는 않았는가.
자선의 달 행사는 과연 불우이웃 돕기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는가. 일시적으로 베푸는 인정으로서 불우한 사람들의 아픔을 영구히 달래줄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불우한 인간이 생기는 이유가 정신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으로 나눌 수 있다. 그들의 정신을 바르게  이끌어주고, 사회적 부조리를 제거하여 이상사회를 건설하기에 얼마나 본질적인 노력을 했는가. 이러한 몇 가지 점을 냉철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